
▲3·1절 남원 ‘평화의 소녀상’ 앞 시민들의 기념행사 ⓒ 남원 3·1절 공동 취재단
지난 3월 1일 오후, 전북 남원 광한루 인근 요천변 공원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역사 주권 회복과 독립 정신 계승을 염원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3·1절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남원 선원사 태극기 정신의 부활과 올바른 역사 주권 회복을 위한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 선언서는 일제 식민사관의 쇠사슬을 끊고,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을 재조명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늘 우리는 남원 선원사 지장전 시왕탱화(十王幀畵) 뒷면에서 10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나타난 '독립운동 태극기'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섰다. 이 태극기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남원 백성들의 기개이자, 찬란한 독립의 의지를 품고 불교계와 지역사회가 하나 되어 지켜온 '살아있는 역사의 증거'였다. (관련기사: 일제강점기 스님들이 그림에 숨겨둔 태극기의 의미 https://omn.kr/241pb)
이에 우리는 남원 선원사 태극기에 담긴 고결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며, 역사의 주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이 강력히 촉구한다.
하나, 선원사 태극기가 상징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자주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진정한 독립의 역사를 복원하라!
하나, 남원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남원 선원사 태극기의 역사적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라!
하나,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가 완수한 『조선사 번역물』을 즉각 공개하고 출판하라! 일제가 어떻게 우리 역사를 조작했는지 그 실체를 밝힌 연구 성과물을 국민 앞에 알려라."
남원 선원사의 '지장시왕도(1917)' 속 태극기는 1919년의 진관사 태극기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지역사회에서는 알려져 있다. 3·1 독립만세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조사가 이곳 선원사에 자주 왕래하였다고 전해온다.
백용성 조사는 조선시대 승병장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하의 3·1 비폭력 만세 항쟁 이전부터, 남원 선원사가 백용성 조사 등 자주독립 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지역사회에서는 해석하기도 한다.

▲3·1절 남원 ‘평화의 소녀상’ 앞 시민들의 기념행사 ⓒ 남원 3·1절 공동 취재단
이날 남원 시민들이 3·1절 기념행사의 선언서에서 언급한 <조선사>는 남원 시민들의 '일제가 왜곡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공감대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사>와 관련된 번역 사업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2년 ~ 2015년)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가 주관하여 일제 식민사관의 근간인 조선총독부 《조선사》를 번역하고, 그 왜곡 과정을 검토하였다.
(2016년 ~ 2018년) 인하대 연구팀이 <조선사> 번역 과정에서 강역(疆域, 영토) 문제 등에 대해 기존 주류 사학계(강단 사학)와 배치되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현재 이 <조선사> 번역물은 국책사업 종료 이후 정식 발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발간한 <조선사>(총 35권)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식민사관 청산'을 주장하는 견해와 '학문적 엄밀성'을 주장하는 견해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로 현재 인식되고 있다.
남원 시민들이 이날 <조선사>를 주목한 데에는, 일제에 의한 1914년 남원군의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이 있다. 일제는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구한말 남원군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한 이들 지역을 분리하여 이웃 임실과 장수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다.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찬의 한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와 남원군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원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는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남원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점을 연관 지어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해석은 지역사회 일부의 시각이며, 행정구역 개편의 공식 목적은 당시 행정 효율화에 있었다.
이날 행사장에서 사진 촬영 등 기록을 담당한 김태윤(시민활동가)씨가 말했다.
"번암면은 섬진강 상류인 남원 요천 수계입니다. 그런데 일제는 거대한 호남정맥 너머 금강 수계인 장수군으로 번암면을 강제 편입시켰어요. 이것은 남원의 항일 정신 공동체를 쪼개려 했다고 지역사회에서는 주장하고 있어요. 평생을 살아온 고향의 수계(水系)마저 등져야 했던 민초들의 아픔이 가슴 깊이 전해집니다.
또한 오수는 남원 역사 문화권의 관문이자, 의견 설화의 충의(忠義)로운 정신이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곳입니다. 1919년 3월 10일, 오수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 만세를 단체로 외쳤습니다. 보통학교 학생으로는 전국적으로 이른 시기의 만세운동 사례로 지역사회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원 고을은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성 전투로 항일 의지가 드높았고,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남원 교룡산 은적암에 머물며 동학 교리를 연구하는 등 동학 관련 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오수개 의견(義犬) 설화가 전승되는 오수역참(獒樹驛站, 현재 임실군 오수면) 지역은 남원부의 관문이었다. 구한말 전해산 의병장의 활동지이며 삼일운동의 민족지도자 백용성 조사의 출생지(현재 장수군 번암면) 역시 남원부 고을의 젖줄인 요천(蓼川)의 상류로서 남원부 지역이었다.
남원 지역사회의 원로인 한병옥(향토사학자)씨가 말했다.
"남원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침략에 치열하게 맞선 고난과 저항의 고장입니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 싸움에서 순국한 만인의사의 고장이고, 일제에 맞서 싸운 동학 관련 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앞으로 남원의 역사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할 때 인접 지역인 임실군 오수면과 장수군 번암면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최영자(전직 교사)씨가 말했다.
"역사의 고비마다 저항의 불길로 일어서서 올바른 역사의 물길을 열었던 남원 땅입니다. 3·1운동 107주년을 맞아 남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1운동의 올곧은 정신을 되새기고 민족의 독립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 오늘 행사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남원 '평화의 소녀상' 앞 3·1절 기념행사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선원사 태극기에 깃든 저항 정신과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의지를 확인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서 남원 시민들의 발걸음은 오늘날 우리가 완수해야 할 진정한 '역사 광복'이 무엇인지 의미를 되묻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역사 인식에 대한 지역사회의 문제 제기를 보여주며, 선원사 태극기의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