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건 <작별 일기>였다. <작별 일기>는 최현숙 작가가 자신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간 곁에서 그 과정을 관찰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쓴 에세이다. 죽음에 이르는 엄마를 바라보는 동정이나 연민에 대한 시선보다는 하나의 생명이 스러지는 그 순간이 한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 주변인들에게 어떠한 배치의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썼다.
<작별 일기>라는 다소 감상적인 제목과는 달리 건조하고 무덤덤한 문체와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최현숙 작가가 구술생애사 작가로서 작업한 <억척의 기원> <할배의 탄생> 등도 인상 깊게 읽었다.
작가는 약 10년간 진보 정치에 몸담았던 사회운동가로서,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사로 노인 돌봄 노동을 하며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해왔다. 현재는 홈리스 현장에서 홈리스를 돌보는 활동을 하며 아울러 사회적, 국제적 이슈와 의제를 사회에 알리는 시위,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이자 글 쓰는 노동자로 살고 있다.
무엇보다 '퀴어 노인'이라 통하는 작가는 성 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차별, 혐오에 맞서는 통쾌한 글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최현숙 작가의 내공이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그의 단단한 내면과 내공이 잘 담긴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2023년 7월 출간)가 아닐까 싶다. 책에서 최현숙 작가는 자신의 지난 삶을 철저히 복기하며, 자신을 괴롭혔던 열정과 분노, 콤플렉스, 부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 애증의 정체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 문학동네
어린 시절에 시작된 도벽과(첫 장의 제목이 '나는 도둑년이었다'라니, 그 대담함이야 이미 말 다 한 셈) 자신을 괴롭혔던 액취증에 대한 '고찰'부터 아버지에 대한 미움, 생활력 좋은 어머니를 '양반집 규수의 산업사회 분투기'로 지칭하며 시종일관 자신의 친족을 한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구성원으로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글은 전통적인 글쓰기에 익숙해진 '점잖은' 독자를 잠시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가, 그것도 작가로서 사회적 인지도도 갖춘 그가 왜 굳이 이런 콤플렉스 덩어리들을 자처해서 들춰내 들쑤신 걸까.
'이번 작업을 통해 십 대와 이십 대 시절의 무저갱(한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바닥이 없는 구렁텅이)들을 제대로 까발려서 속이 후련하다. 내 무저갱에서 직립해 걸어 나오며 까발리면서 얻은 힘줄로, 내게 시비를 거는 세상의 갖은 정상 타령과 불안과 혐오, 소문과 속임수에 맞서나가는 이야기들도 모았다. 나를 까발린 이유는 우선 나부터 좀 후련해지기 위해서고, 까발려야 제대로 통과하기 때문이며, 내 사례를 통해 혹 각자가 처했었거나 처해있는 수렁과 두려움에서 직립하여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7p)
최현숙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
작가 개인적인 '무저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점차 이웃과 사회로 확대된다. 늙은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빈곤과 이빨과의 관계, 시신과 공영 장례에 대한 철학, 자유 죽음에 대한 선택, 이종과 반려에 대한 생각, 늙은 신체에 찾아온 섹슈얼리티와 성적 경험, 타인의 빈곤과 동정, 홈리스를 바라보는 시선 등 주제들마다 약간의 격차는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진부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대담하다.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며 파열음이 들린다. 최현숙 작가만의 생각, 철학, 주관으로 오롯이 쓴 글이다. 최현숙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모든 주제가 대부분 놀라웠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종 간 반려에 대한 이견'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작가는 동물과 식물을 키우고 재배하는 '반려'에 대해 약간의 딴지를 건다. 작가는 "이종 간 '반려'라는 것 자체가 과연 평등하고 공정한 관계일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를테면 길고양이는 짧게 살고 반려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오래 산다는 설이 있는데 오래 사는 것만이 생명의 목적이냐고 되묻는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들이 있을 수 있고 반론이 가능하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예전부터 생각했던 주제였다. 반려동물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반려동물·식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 삶의 방식을 누가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짧게 살든 병에 걸리든 나답게 사는 삶을 원하며 나다움이라는 욕망의 연장선에서 동물들 역시 자신답게 살다 죽는 것이 가장 나으리라 가늠할 뿐'(p.235)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이처럼 작가는 민감하고 예민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들(자유 죽음(자살), 공영 장례, 노인의 성)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한다. 머릿속에 스치는 단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길어올린 자신만의 철학이 응집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를 한 줄로 표현하긴 어렵다. 여러 키워드는 가능하다. 나다움, 자유, 직면, 늙음, 죽음... 그러나 역시 이 책의 제목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가 대변하듯 작가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심리 뒷면에는 그것을 조작하고 이용하려는 속임수가 있다고, 거기에 속지 말자고 제안한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이 문장에 두려움 대신 다른 단어를 대입해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불안은 소문일 뿐이다', '편견은 소문일 뿐이다', '대박은 소문일 뿐이다' 등. 모처럼 통쾌한 에세이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약간의 편견과 선입관만 버리면 가능하다.
'두려움의 뒷면은 혐오다. 대체로 혐오의 이유는 낯섦이지만 늙음은 널려 있으니 낯설 것도 없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 없이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2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