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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쇠고 열하루가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에 사는 막내 시동생 부부가 다녀갔다. 큰 시동생 부부는 독감으로 오지 못했고, 조카들 역시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기일은 유난히 고요했다. 매년 2월 말일은 시아버님 기일이다. 아버님 기일은 다른 집들과 달리 양력에 모신다.

어른이 안 계신 우리 집에서는 맏며느리인 내가 집안 대소사를 챙긴다. 장남인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집안에서 제일 연장자인 나는 가족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도록 나름대로 애쓴다.

80년대 말에 결혼해 부산 시가에 합가해 살기 시작했다. 가풍을 익히려면 최소한 6개월은 며느리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의 특명이 있었다. 그땐 그게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라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렇게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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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시동생 둘이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없는 낮에는 어머님께서 발라주시는 팩을 얼굴에 얹고 친 모녀처럼 방바닥에 나란히 누워있을 때도 많았다. 아들만 삼형제를 키우시던 어머님은 내가 딸처럼 생각되셨는지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특히 시부모님의 연애사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열여덟 소녀처럼 눈빛이 반짝거리고 볼은 발갛게 물들었다.

시부모님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셨다고 한다. 침구류를 만드는 직업이었는데 어느 날 아버님께서 결근하신 것을 알게 된 어머님이 간호해 주시다가 두 분이 정이 싹트셨다. 그때 아버님은 혈액암으로 결혼을 거부하셨다고 한다.

어머님께서 끝까지 설득하여 결혼에 이르렀다는 그 이야기를 들은 젊은 새댁의 내게는 놀라움보다 존경심이 먼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랑이 오늘의 우리 가족을 지탱해 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까? 사랑이 그토록 위대한 힘이 있을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님은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더 고귀한 연민을 택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에게도 어머님을 향한 연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선택이 우리 가족의 시작이 되었으니까.

남편이 아홉 살이었을 때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처음으로 백 점 받은 날이었다고 한다. 받아쓰기 공책을 손에 들고 골목을 뛰어왔을 때였다. 그러나 집 안에는 싸늘한 공기만 감돌았다. 어머님의 흐느낌과 두 어린 동생의 말간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아버님은 세 살, 여섯 살, 아홉 살 먹은 세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홀로 먼 길을 떠나셨다.

올해는 아버님 돌아가신 지 50년 되는 기일이다. 남편은 아버님 얼굴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두 시동생에게는 기억이 없다. 30대의 푸릇한 젊은 시절의 아버님 사진을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 중 하나도 기억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어머님은 살아생전에 신세대 여성이었다. 아들 셋을 키우기 위해 강해져야 함도 있었겠지만, 성정 자체가 담대하고 밝고 씩씩한 분이셨다. 심지어 행동도, 생각도 빠르셨다. '총기'로는 두 번째로 가라면 섭섭해하실 만큼 총명하고 판단이 빠른 분이셨다.

아버님 기일을 양력, 그것도 삼일절 전날이라고 딱 못 박으신 것도 어머님이다. 자녀들이 결혼하여 제사에 참석하고 하룻밤 묵고 천천히 가라는 어머님 나름의 계산이었던 거다. 지금은 제사를 비교적 초저녁에 지내지만 50년 전만 해도 밤 열두 시 넘어서 지냈으니까 자식들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사랑 표현법이었으리라.

시아버님 기일 맏이와 막내가 올리는 제사
시아버님 기일맏이와 막내가 올리는 제사 ⓒ 황윤옥
몇 년 전부터 아버님 기일에 어머님을 함께 모시고 있다. 어머님 기일은 더운 여름이라 납골당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고 있다. 명절에는 가족들이 음식을 사 와서 오순도순 정겹게 식사하기로 정해 놓았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아버님 기일은 제사상을 제대로 차린다. 그날만큼은 시간도 마음도 정성껏 모은다. 올해는 특별히 큰 시동생을 위해 소 갈비찜을 준비했다. 독감으로 오지 못하게 되어 괜히 내가 더 서운했다.

늘 북적이던 기일, 아들네까지 합하면 모두 열두 명인데 이번엔 우리 부부와 막내 시동생 부부 이렇게 넷이서만 한적하게 보냈다. 다음 기일에는 완전체가 모여 절을 하게 되길 바란다.

'어머님, 아버님과 만나셔서 고통 없는 곳에서 잘 계시지요? 저도 맏이 노릇을 잘하려 애쓰고 있지만, 삼형제가 더욱 우애있게 지내도록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아버님께도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버님 증손자가 둘입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두루 살펴주세요. 내년에는 온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해 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시아버님기일#어머님#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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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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