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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처벌, 사회대개혁 촉구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응원봉(탄핵봉), 피켓 등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처벌, 사회대개혁 촉구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응원봉(탄핵봉), 피켓 등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왕조 말기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집단이라는 내적 모순과 일본을 비롯 서구열강의 침탈이라는 외적 모순이 겹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빠져들 때 '보국안민'을 위해 일어났다. 지배층은 국정의 개혁·경장 대신에 외세에 영합하며 이권을 챙기고, 내정은 곪을 대로 곪았다.

당시의 부패상을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10만 량이 있어야 과거에 급제하고 감사자리 하나에도 2만 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안동 김씨만 가능했다"고 썼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봉준을 선봉으로 하는 깨어난 동학농민지도자들이 봉기하여 역사의 물굽이를 바꾸고자 하였다. 사발통문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뜻을 전하며, 동학의 '학'을 통해 근대성을 일깨운 민중들이 기꺼이 혁명의 대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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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손에 손에 〈광제창생〉, 〈척왜척양〉,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깃발을, 다른 손에는 소나무에서 추출한 송진으로 켠 횃불을 들었다.

횃불은의병운동→독립운동→4.19혁명→반유신투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시위→ 응원봉→빛의 혁명으로 전개되었다. 동학의 맥박은 각종 난관에도 이어지고 복원력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동학혁명은 근현대 민족주의의 발원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발전과 통일운동의 가치관으로 작동한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정명(正名)이 회복되고,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의 날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각종 자료와 사료가 유네스코 문화기록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봉준 등 지도자들에 대한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각에서는 "동학란 때문에 일제가 몰려와 종국에는 나라를 망쳤다"는 따위의 망론이 나돈다.

동학농민혁명은 많이 지체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새삼 역사의 준엄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청년세대와 함께 우리 근현대사의 정맥인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고자 한다.

횃불→촛불→응원봉으로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는 길에 뜻 있는 분들의 동반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학농민혁명#횃불#촛불#응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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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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