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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4 10:50최종 업데이트 26.03.04 10:50

"성실하게, 끝까지 칼을 놓지 않는 조각사입니다"

[인터뷰] 인천 개항장 항미단길 민공방 조은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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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은 지난달 28일 토요일 오후, 인천 개항장 항미단길 을 걷다가 들른 '민공방'. 유리창을 통해 쏟아진 빛이 진열된 도자기 위에서 반짝이는 그 빛은 단순한 광택이 아니라, 오랜 시간 흙을 만져온 한 사람의 시간처럼 깊고 단단했다. 이 길을 기획하고, 지키고, 빛으로 채워온 민공방 조은경 대표의 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항미단길 민 공방 조은경 대표
항미단길민 공방 조은경 대표 ⓒ 송정훈 기자

조 대표의 출발은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혼자 집중하는 일을 좋아했지만,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한때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과 자신의 성향을 돌아보며 방향을 틀었다.

"움직이고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묵묵히 하는 일이 저한테 맞았어요.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만드는 직업을 갖고 싶었죠."

1984년, 서울에서 색자(色磁) 팀이 그 당시 김포 계양면 임학리(지금 계양구 임학동)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막내로 들어간 것이 도자기 인생의 시작이었다. 유약 파트, 화공 파트, 물레를 돌리는 '대장', 흙을 다루는 꼬막사, 그리고 젖은 흙에 직접 칼을 대는 조각사까지, 도자기 작업장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었다. 조 대표는 그중 '조각사'였다.

 조각사의 길을 시작한 초기
조각사의 길을 시작한 초기 ⓒ 본인 제공
"저는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각 기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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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도 자신을 '작가' 대신 '조각사'라고 소개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화려한 개념이나 명성보다, 손끝의 감각과 성실함이 우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 대표가 스스로 세운 목표는 분명했다. 항아리를 묶어두고, 젖은 흙 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칼을 꽂아 내려가는 것.

"젖은 흙은 수정이 안 돼요. 한 번 들어가면 끝까지 가야 해요. 두께도 다 다르고, 손 감각만으로 그걸 읽어야 하죠."

흙은 날씨와 습도에 따라 다르게 마른다. 작업 일정조차 흙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그는 이를 "설렘이자 두려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42년이 흐른 지금, 칼 때문에 생기는 '파'(흠)는 거의 없다고 했다. 자랑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

 젖은 흙 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칼을 꽂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젖은 흙 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칼을 꽂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 송정훈 기자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아이를 만드는 것. 그게 제 최종 목표에요."

민공방의 대표작은 '보석 시리즈'다. 어느 날 가마에서 꺼낸 작품이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고, 그 모습이 보석처럼 보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말 보다 '보석 같다'라는 말이 더 쉽게 다가 오잖아요."

최근에는 싱가포르에서 찾아온 손님이 두바이 왕족 선물용으로 건너간 잔을 보고 찾아왔는데 조 대표는 그날 방명록을 "죽을 때까지 간직할 기록"이라고 말했다.

'민공방'의 '민'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어린 시절 아이의 아명, 아름다울 민(美), 돌 민(珉), 그리고 단순하고 빨리 쓸 수 있는 글자 획수까지. 무엇보다 그는 미음 (ㅁ)이 좋다고 한다.

오후3-4시 공방안으로 들어온 햇살에 유난히 작품들이 빛난다
오후3-4시 공방안으로 들어온 햇살에유난히 작품들이 빛난다 ⓒ 송정훈 기자

항미단길은 이 길에 터를 잡고 살던 상인과 주민이 함께 만든 이름이다. 어릴적 외가에 추억이 남아있는 길에 19년도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 상인들과 의견을 모아 '항미단길'이라는 이름을 완성했다. 인천 개항장의 오래된 그물과 어구 거리로 수십 년을 지켜온 상인들과 함께 전통을 살리는 길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코로나를 거치며 길은 위기를 맞았지만, 상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초입과 끝에 작은 상징물을 세워 구획을 정하고, 주민들과 약속을 지켜가며 공간을 다듬었다. 그동안 어둡던 길에는 LED 등이 달렸고, 밤에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되었다.

"밤에 '여기가 그 항미단길이래'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

길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상권을 재편해 높은 권리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항미단길이 특정 개인이나 몇몇 정치인의 치적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앞서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 길에서 이익을 남기지 말자고 저 자신과 약속했어요."

그는 대신 장학금 기탁과 연탄 봉사, 개인 기부를 이어왔다. 방송 출연료를 받아서 사비를 보태 기부하기도 했다. 중구청 기탁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것을 뒤늦게 보고 놀랐다고 했다.

항미단길 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항미단길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 송정훈 기자

항미단길을 밝히는 일 역시 개인적 약속에서 출발했다. 한때 병마와 싸우던 시절, 길 초입에 있는 제물진두 순교성지 앞에서 "언젠가 이 길을 밝히겠다"라고 기도했다.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최근 조 대표는 영종도(옛 자연도)를 모티프로 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제비, 등대, 바다 풍경을 도자기 위에 담는다. 동양화처럼 보이지만, 흙으로 빚어낸 장면들이다. 꽃잔 시리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꽃잔
꽃잔 ⓒ 송정훈 작가

그는 도자기를 통해 지역의 기억을 스토리텔링으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고향의 시간과 이야기를 담는 매개다. 42년을 흙과 함께해온 조은경 대표. 그가 말하는 앞으로의 계획은 소박하지만 단단하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에 많이 의지했어요. 이제는 제 힘으로 수익을 내서, 더 여유 있게 장학금도 내고 싶고요. 더 많은 예쁜 아이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저는 작가가 아니고 조각사에요. 성실하게, 끝까지 칼을 놓지 않는 사람."

월미도 넘어 바다로 햇살이 기울 무렵, 공방 안의 도자기들이 다시 빛났다. 그 빛은 42년을 견뎌온 한 조각사의 인생만큼 보석처럼 반짝였다.

#항미단길#민공방#개항장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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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2018년 부터 한중미술교류를 진행해왔습니다.교류전을 진행하며 미술에 대해 알고싶어 도슨트를 공부했고 사단법인 인천미술협회. 메세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좋은 작가분들의 작품과 전시를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주위에 좋은 소식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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