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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3 16:25최종 업데이트 26.03.03 16:25

가장 느린 공부법으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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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사편찬위원회 주관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하 한능검)이 있었다. 고등학생 아이가 지난 1학기 시험 이후에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한능검 좀 신청해줘." 갑자기 한능검 접수라는 임무를 받은 나는 신청에 들어갔다.

돈만 내면 신청은 누구나 가능한 줄 알았는데 아니 웬걸. 시험장 확보부터 난항이다. 한능검 원서 접수는 마치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를 신청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 결과는 성공. 다행히 집 근처에 있는 곳에서 한능검 심화 과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국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한능검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이 시험은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한국사 전반에 걸쳐 역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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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은 기초적 역사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초등학생들이 많이 치르는 것 같고, 심화 과정은 한국사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바탕으로 주요 사건과 개념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아무래도 취업 준비생이나 공무원 준비생, 일반적으로 성인들은 심화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심화의 경우 단순 암기로 단기간에 공부하면 결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참고로 최근 위원회에서 지난달 20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급 지원자 수 중 합격률은 61%로 1급은 28.97%, 2급은 17.16%, 3급은 15.05%라 한다.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 ⓒ 국사편찬위원회

한능검 응시에 성공한 이후 아이는 바로 최태성 선생님 책을 구비해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학교 국사 교과서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상에는 비장의 학습 도구가 더 있었다. 다름 아닌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이었다.

국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학생들이 배우는 전 과목 공부에 기본은 어휘다. 그 어휘를 모른다면 어떻게 문장을 이해하고 단락을 파악할 수 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속뜻사전.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접했다.

"재위 在位 있을 재, 자리 위. 임금의 자리에 있음 또는 그 동안."

사전에서 재위를 찾다 사전은 학습에 필수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 펜으로 칠해본다.
사전에서 재위를 찾다사전은 학습에 필수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 펜으로 칠해본다. ⓒ 정소나

사전은 한자가 가진 특질을 활용해 단어의 속뜻을 잘 풀이해줘서 잘 모르는 한자어가 나오면 아이는 사전을 찾아 의미를 파악했고 시간이 지나니 단어를 보면 유추하는 능력도 절로 생겼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이와 재미있게 사전 활용을 했다. 내가 단어 뜻을 설명하고 퀴즈를 내면 아이가 답을 맞혔다. "지도에서 해발 고도가 같은 지점을 연결한 곡선이 뭘까." "음.. 같을 등, 높을 고...를 유추하고 등고선?"이라는 답을 도출하는 식으로 말이다.

국어사전 활용 초등학교 시절 국어사전 활용하는 모습
국어사전 활용초등학교 시절 국어사전 활용하는 모습 ⓒ 정소나

그리고 7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마주한 한능검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시험을 잘 보았느냐는 내 물음에 퉁명스럽게 "못봤어"라고 이야기한다. "괜찮아. 기회는 많고 그냥 재미로 봤다 생각해"라 위로했다. 시험이야 언제든 또 볼 수 있으니까.

시험지를 훑어보니 문제가 어렵다. 45번 문항, 한 지문에 한자어만 35개가 넘는다. 지주(地主), 봉착(逢着), 납부(納付), 상환(償還), 액면(額面).... 조사를 빼면 거의 한자어다. 답지는 어떠한가? 역시 한자어. 앞뒤 문맥을 보고 대충 이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제대로 뜻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긴 수험 생활을 버틸 것이다.

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5번 문제 한자어가 한 지문에 이렇게 많다.
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5번 문제한자어가 한 지문에 이렇게 많다. ⓒ 정소나
한국사 교과서 교과서는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그 사실을 잊지말자
한국사 교과서교과서는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그 사실을 잊지말자 ⓒ 정소나

다른 예로, 진흥왕 순수비에 순수는 무슨 의미일까? 순수하다. pure라는 의미일까? 순수 巡狩 돌 순, 조련할 수 /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군대를 조련함. 임금이나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의 생활을 살피던 일을 말하고 순수비는 그것을 기념해 그곳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사전을 읽으니 1+1=2라는 공식처럼 명쾌하게 이해된다. 목욕탕 속에서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능검 시험문제지 제77회 한능검 시험 문제지
한능검 시험문제지제77회 한능검 시험 문제지 ⓒ 정소나
가채점 결과, 걱정과 달리 결과는 1급. 생각지 못한 결과에 기뻐했다. 7년의 느린 걸음이 만든 '한능검 1급 합격'의 결과를 가져왔다. 어쩌면 초단위로 뚝딱하면 답이 나오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느린 공부법인 '사전 활용' 이 결과적으로는 가장 빠른 학업 성취의 '지름길'이 되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아이는 말한다. 한능검 1급의 비결은 교과서와 국어사전이었다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인증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인증서 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인증서한국사능력검정시험인증서 77회 ⓒ 정소나

문해력 실종 시대라 말하는 요즘 자라나는 아이에게 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바로 국어사전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만 검색하면 1초만에 뚝딱 답을 알려주는 시대, 손바닥만한 국어사전 한 권이 미래에 자녀에게 어떤 힘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6년 1월 23일 국회에서 AI시대에 필요한 문해력, 사고력 역량을 키우기 위해 독서국가선포식이 있었다. 아이에게 생각의 힘을 길러주고 싶다면 이번 주말 근처 서점에 가서 국어 사전을 찾아보자. 그리고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국어사전을 읽고 활용하면 어떨까?

https://www.history.go.kr/

#국어사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국사시험#우리말한자어속뜻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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