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3법' 입법을 추진 중인 가운데,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행정처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한 시민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법개혁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취임 42일 만이다. 그는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물러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중 법왜곡죄 도입(형법 개정안)이 26일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항의로 읽힌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가 '물러난'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박 처장은 법원행정처장직을 내려놓았다. 2024년 8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신분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대법원 판결에 참여하는 권한도, 헌법이 보장하는 임기도, 그 자리에 부여된 모든 권위도 어느 것 하나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보직 배지 하나를 반납했을 뿐이다.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부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자리다.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시설·정책·기획을 모두 관장하며, 사법부를 대표해 입법부·행정부와 소통하는 역할도 맡는다. 쉽게 말해, 판결하는 사법부의 '행정 수장'이다. 그러나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보직'이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 한 명이 겸임하는 직책이다. 처장직을 내려놓아도 대법관직은 그대로 남는다.
사법부가 반발하는 사법개혁 3법이 뭐길래
사법부가 거세게 반발하는 법안은 세 가지다. 각각의 내용과 사법부의 우려를 차례로 살펴보자.
법왜곡죄는 판사나 검사가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판결하거나 처분을 내렸을 경우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법부는 이 법이 사법 독립을 위협한다고 본다. 판결은 본질적으로 법 해석의 영역인데, 그 해석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순간 판사는 소신 있는 판단 대신 법적 안전지대를 선택하게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패소한 당사자가 판사를 고소·고발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판결이 법정이 아닌 여론과 정치의 압박 속에서 이루어질 위험도 있다고 주장한다.
재판소원 도입(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이라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의 판결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이 제한이 풀린다. 사법부는 이것이 사실상 '4심제'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끝난 재판이 다시 헌재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면, 법적 안정성은 흔들리고 소송은 더 길어진다.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법관 증원(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이다. 표면적으로는 업무 과중 문제 해소처럼 보인다. 실제로 대법원은 연간 수만 건의 상고심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적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대법관이 늘어나면 대법원의 구성 자체가 바뀌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이 사법부 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권을 쥔 쪽이 사법부의 색깔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다.
사법부는 왜 '반쪽 사퇴'를 선택했을까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자제하는 조직이다. 판사가 정치적 행위자로 비치는 순간 재판의 중립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에서 사퇴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래서 대법관직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보직 사퇴라는 방식을 택한 게 아닐까.
또한 대법관은 헌법이 임기를 보장하는 공직이다. 중도에 자리를 비우면 대통령이 후임을 임명하게 된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장 사퇴가 과연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행동일까. 메시지는 남기되, 자리는 지키는 방식. 그것은 항의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희생은 없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사법부의 우려가 모두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법왜곡죄가 남용될 경우 사법 독립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 재판소원이 소송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논점이다.
하지만 사법부가 스스로 묻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법왜곡죄를 두려워하는 판사가 있다면, 그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관이라면, 형사처벌 조항이 무서울 까닭이 없다. 재판소원을 두려워한다면, 대법원이 지금까지 헌법 문제를 얼마나 충실히 다뤄왔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대법관 증원을 반대한다면, 현재 14명이 수만 건의 상고심을 처리하는 구조가 국민을 위한 사법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사법개혁은 필요하다는 데, 진영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나아가야 하는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 논쟁을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넘어가자. 그는 법원행정처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대법관 자리는 내려놓지 않았다. 이 나라 사법 구조 안에서 누려온 온갖 특권은 모두 그대로 있다.
국민들의 사법개혁 요구에 항의하면서 법원행정처장을 사퇴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여전히 그 사법개혁의 대상인 사법부에서 특권을 누리는 모습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입법부의 사법개혁에 저항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끝까지 쥐고 놓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그 행동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 방식이 얼마나 신뢰를 살 수 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대법관 자리도 한 번 걸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