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천 미추홀구 보건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이유진(가명, 35)씨가 지난달 13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 앞에 놓인 문서는 국민권익위원회, 인천광역시 소청심사위원회의 답변
인천 미추홀구 보건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이유진(가명, 35)씨가 지난달 13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 앞에 놓인 문서는 국민권익위원회, 인천광역시 소청심사위원회의 답변 ⓒ 이진민

축복인 줄 알았던 임신이 '계약 해지' 사유가 됐을 때, 그 차별을 국가기관마저 외면했을 때 엄마는 무너졌다. 그리고 의심했다.

"아무리 국가에서 임신과 출산을 장려한다고 해도 공무원마저 차별 받는데, 과연 어느 여성 노동자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까요?"

인천 미추홀구 보건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이유진(가명, 35)씨는 지난해 9월 보건소에서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사유는 계약기간 만료와 업무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받아 재계약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 과거 출산휴가 사용을 알리자, "한 사람으로 인해 다수가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은 무리"라며 계약 종료를 예고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AD
이씨는 다급하게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와 인천광역시 소청심사위원회(아래 소청심사위)를 찾았다. 보건소의 계약종료 통보가 부당하니, 자신을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권익위는 출산휴가 통보 전후의 상황이나 평가 과정에 대해 상세히 따지지 않은 채 "낮은 업무 평가 등급에 따른 결정"이라는 기관 주장을 수용했다. 소청심사위 역시 "이씨에게 계약갱신 기대권이 없어 심사 대상이 아니"라며 판단 없이 사건을 각하했다.

이씨는 지난달 13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보건소에서 계약이 종료된 것도 힘든데 국가기관마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외면당하는 기분"이라며 "임신, 출산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소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일터는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처음 받은 최하위 D등급… "고용 차별 명백"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치매 예방 교육 자료와 관련된 자료를 가리키고 있다.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치매 예방 교육 자료와 관련된 자료를 가리키고 있다. ⓒ 이진민

이씨는 2019년 9월부터 미추홀구 보건소에서 치매전문 작업치료사로 근무하며 치매예방·인지강화교실 운영 등을 담당했다. 그는 근무 성과에 따라 최대 5년까지 계약 연장이 가능한 임기제 공무원으로 당시 2025년 10월까지 계약한 상태였다.

그는 지난해 2월 보건소에 임신 사실을 알렸고 3월부터 모성보호제도에 따라 단축근무를 했다. 같은 해 7월 3일 소속과 팀장 A씨에게 출산휴가 사용 계획을 알리자, A씨는 다음 날 이씨와의 면담 자리에서 "애기는 축복인데 둘 다 가질 수 없다"며 재계약 시점을 앞둔 이씨에게 "여기 잡다가 애한테 소홀해지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겠냐", "(이씨는) 능력이 있으니까 여기 나중에 또 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그로부터 약 3주 후인 7월 23일, 이씨는 A씨, 소속과 과장 B씨와의 면담 자리에서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B씨는 "휴직 기간 동안 사람들 피로도 쌓이고 그러면 원망도 들을 수 있다"면서 "한 사람으로 인해 다수가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이씨가 "출산으로 인한 공백 기간 때문이냐"고 묻자, B씨는 "맞다. 그걸 감수하려면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임신과 출산이 축복이 아니라 경력 단절이자 결격사유가 된 느낌"이었다며 "치매 전문치료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는데 그간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듯했다"고 했다. 그는 임신 상태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자신의 업무를 기록한 달력을 가리키고 있다.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자신의 업무를 기록한 달력을 가리키고 있다. ⓒ 이진민

이씨는 지난해 8월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다음 달 보건소로부터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당연 퇴직" 통보를 받았다. 당시는 아이를 낳고 겨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먼저 권익위에 보건소 결정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권익위는 보건소가 계약 해지에 앞서 업무평가를 실시했고, 이때 이씨가 받은 등급이 계약 해지 대상에 해당하는 D등급(부진)이었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근무 기간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항상 높은 등급을 받았다"면서 "계약 종료를 앞둔 평가에서 '동료 서포트(보조 운영) 횟수 관련 실적을 상세히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처음 받았고, 이후 등급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이전까지 근무실적평가에서 항상 B등급(보통)을, 성과상여평가에서는 S, A, B등급을 받았다.

이씨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소청심사위였다. 하지만 소청심사위는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관련 법리에 따라 이씨에게 계약갱신에 대한 기대권이나 계약연장 이행에 대한 신청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즉, 이씨는 심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씨는 "국가기관이 사건의 본질인 모성차별을 외면하고 있다"며 "제대로 조사받지도 못해 이젠 '내가 차별받은 게 아니었나' 혼란스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인천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에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의 계약을 종료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출산 이후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구조적 차별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성권 보호 정책을 실천하려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이번 사건도 인천시 미추홀구의 행정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계약 종료하는 사건에서 기관들은 주로 인사 평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며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법원 판례에서는 이를 다룰 때 행정 절차상 오류를 넘어 실질적인 원인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건은 출산휴가 통보 이후 이씨에 대한 평가가 급변했다는 점에서 고용차별이 명백한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권익위와 소청심사위는 형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이는 지자체에 모성보호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상급자들 "당시 발언 기억 안 나"

팀장 A씨는 지난달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이씨와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육아 상담을 나눴다"며 "정확한 발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 낮은 등급을 받았고, 이에 따라 계약종료가 결정된 것"이라며 "나는 인사권자가 아니라서 해당 과정에 결코 개입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과장 B씨는 "'동료 서포트(보조 운영) 횟수'는 평가에서 매번 반영돼 왔는데, 지난 평가부터 세밀하게 적용되면서 평가 과정에서 이씨에게 관련 질문이 들어갔고 평가 기준을 상세히 모르는 이씨 입장에서는 처음 기준이 포함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며 "이씨와의 계약을 종료하기 위해 낮은 점수를 줘야 할 이유도, 그럴 권한도 내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와의 면담 자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위로와 격려의 발언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여성 직원들이 많이 근무하는 곳인 만큼 모성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너무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권위는 차별을 쟁점적으로 다루는 국가기관인 만큼 이전 기관들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인권위 결정은 오는 13일에 나올 예정이다.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치매 예방 교육 자료와 관련된 자료를 보고 있다.
이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치매 예방 교육 자료와 관련된 자료를 보고 있다. ⓒ 이진민

#인천시#미추홀구#인권위#권익위#임신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진민 (real2) 내방

오마이뉴스 사회부 이진민 기자입니다 really@ohmynews.com 모든 제보를 다 읽습니다



독자의견4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