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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 남편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었다.
"내일 무슨 신발 신고 나갈 거야?"
"내일? 그건 내일 돼봐야 알지. 내일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뭐."
현재를 딛고서 늘 내일을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좁은 신혼집 현관에 나와 있는 여러 켤레의 신발을 보며 정리하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 에둘러했던 말 같다. 두 사람 사는 집에 나와 있는 신발만 대여섯 켤레가 넘었으니 깔끔한 남편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나는 그리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의 기분과 날씨, 공기의 질감에 따라 입는 옷도, 먹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달라지곤 했으니 예측 불가,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불가항력 사고

▲새학기를 준비하며. ⓒ kellitungay on Unsplash
그러다 정말 예측 불가의 일이 일어났다. 2017년 1월, 불가항력이라는 사고로 중증 시각장애인이 된 후,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열어 삶을 이어 나가야 했던 그즈음부터 였다. 미리 갈 곳의 동선을 체크해 보고, 생전 안 하던 기차 예매나 약속 장소의 주차 시설을 알아보는 등 계획적이어야만 생존 가능한 삶이 펼쳐졌다. 나의 계획성은 본능이기보다는 생존이자 생계이자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삶은 예측불허의 장면들을 어김없이 뱉어 낸다. 거기에 중간이라도 가려면 미리 살펴보고 점검해야 내 마음속 불안도 눌러 놓을 수 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기도와 염원만으로 말끔하게 해결되는 속성이라면 우리네 인생은 마냥 꽃길에 가까워야만 하는 것 아닌가?
촘촘히 준비하면 설렘이 불안을 압도하게 된다. 꼭 그런 기분이 든다. 새롭게 발령 받은 학교에서 보낼 첫날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필요한 부분들을 준비했다. 개학 첫날 각 가정으로 보낼 학생 기초 설문 자료와 첫 결재 상신할 문서들을 미리 편집해 두었다. 아이들의 학반과 시간표를 체크하고 주로 다닐 1층 공간의 동선도 점검했다.
그렇게 준비해도 반드시 돌발 상황은 펼쳐질 것이다. 꼭 그런 마음으로 나는 3월 문턱 앞에 서 있다.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이 되었으니 봄은 기다리면 오는 줄 알았다. 며칠 전에는 뜻밖의 싸락눈이 내렸다.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겨울도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오는 봄은 없다. 삶의 평안이 어디 거저 주어지는 것이었던가?
새 학기를 앞둔 요즘,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부모님은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3월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 발령 받은 신규 선생님들은 첫 제자들을 만날 기대와 설렘을 안고 새 출근복을 장만하고 부푼 마음으로 2월의 끝자락에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수교사 19년차인 나도 두렵다
특수교사로 19년 차가 된 나도 두려움을 안고 3월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을 기대함으로 기다릴 수 있는 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거저 오지 않는 봄을 수차례 보내며 얻게 된 선물이다. 쉬이 가지 않던 겨울을 통과하며 생긴 여유에 가깝다. 어쩌면 두려움과 염려로 잠식당해야 마땅한 상황을 누르고 촘촘히 준비해 본 내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섰다. 불확실성을 딛고 선 자리에서 운동화 끈을 더 단단하게 고쳐 매어 본다. 깊게 심호흡을 해 본다. 걸어갈 길이 마냥 꽃길이 아니고, 바람 솔솔 부는 산책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조용히 되뇌어 본다.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과 끝이 있는 완주를 해 내리라 다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