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29일간 DMZ와 파주 인근에서 열릴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은 전쟁과 분단, 혐오와 차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연속 기고 '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는 분단과 경계, 평화,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라는 다섯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의 문학이 경유해 온 고통의 역사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어느덧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해진 단어일 디아스포라(diaspora), 그런데 우리 그 단어 정말 잘 알고 쓰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이들 전공자 말고는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전공자도 대답하기 어려운 개념이 바로 '디아스포라'이다. 그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디아스포라란 본래 유대인의 비참한 역사에서 기인한 개념으로, 개념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어 'diaspeirein(διασπείρειν)'과 'diaspora(διασπορά)'는 '참혹', '곤경', '전율'의 대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za-avah'의 성서 번역어로 채택되었다. 다만 그 의미는 단지 쫓겨나 흩어진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도래할 '구원'과 '귀환'을 포함하는바, 요컨대 '디아스포라'는 유대민족이 그간 겪어온 민족적 이산의 '고통' 및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과 더불어 그 의미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
한편 디아스포라 개념은 유대인의 역사를 벗어나, 유사한 이산의 고통과 절실한 희망을 공유한 다른 사례들로 확대된다. 이를 두고 프랑스 사회학자 스테판 뒤푸아 (Stéphane Dufoix)는 저서 Diasporas (2008)에서 "'디아스포라'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단어가 되었다"라 말하며, 그것이 과거에는 "고유명사이자 준 고유명사, 즉 닫힌 범주였지만 오늘날에는 일반명사가 되었"으며, "디아스포라는 스스로 '말'을 한다"고까지 얘기한다.
특히 디아스포라 개념을 선의의 의도로 활용하는 이들에게는, 이주자와 난민, 망명 지식인 등의 여러 디아스포라적 주체들이 '혼종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러한 혼종적 디아스포라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은 기존의 국가 중심 질서와 문화적 헤게모니를 흔들고, 오늘날 탈식민 연구의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고유명사로서 디아스포라' 개념과 '일반명사로서 디아스포라' 개념, 즉 디아스포라 개념의 기원과 오늘날 그 유연한 확대 사이에는 좀처럼 화해되기 어려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디아스포라의 디아스포라'는 조어를 만든 로저스 브루베이커 (Rogers Brubaker)는 Grounds for Difference (201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이 디아스포라라면, 누구도 뚜렷하게 디아스포라가 될 수 없다. 이 용어는 이제 이민자, 외국인, 난민, 게스트 노동자, 망명 공동체, 해외 공동체, 민족 공동체와 같은 단어를 포함하는 더 큰 의미 영역과 의미를 공유할 정도로 변별력을 잃게 되었다. 디아스포라의 보편화는 역설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렇다. 디아스포라 개념 자체가 그 안에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좀처럼 알 수 없는, 활용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개념이 '디아스포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까다로움의 정체는 우리를 더욱 주저하게 만드는 윤리적인 것이기도 한데, 그 사정이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희망' 사이에서 그들의 고통을 고통다운 고통으로, 그들의 희망을 희망다운 희망으로 진정 받아들이고 있던 것일까. 앞서 혼종성과 탈식민 연구의 사례에서 보았던 것처럼, 어느덧 우리 디아스포라라는 말과 더불어, 조금은 익숙하게 고통을 통과하며 제각각의 희망을 구체화해 나간 것은 아닐까. 디아스포라를 구성하는 '희망'은 피안의 절실한 구원을 넘어 세속의 구체적인 영웅으로 그 모습이 구체화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느덧 디아스포라 개념을 특수화하는 가운데, 우리를 그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안전하게 격리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쉽사리 벗을 수가 없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개념 및 그 작품들을 독서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어느덧 세계의 고통을 타자의 것으로 국한시키며 그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외설적 폭력에서 좀처럼 떳떳할 수가 없다.
다른 한편 디아스포라 개념을 보편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고통을 감상화하고 나아가 고통으로부터의 창발성을 자유주의적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또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작가가 쓴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가 겪은 고통에 어느 정도 공감, 연민하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관련한 우리의 관심은 그러한 고통을 '극복'한 혹은 이를 견뎌내고 있는 작가의 윤리적인 '방법'들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런즉 이 글이 제시하는 방향은 '희망'보다도 먼저 '고통', 고통에의 전염과 머무름, 공감이 아닐 수 없겠지만, 그것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다. 오는 3월 27일부터 사흘간 파주 일대에서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 어려운 일을 자처하고 수행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의 무게를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는 이유는 아마도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의 진심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뭇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 그리고 응원이 필요한 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