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기존의 대량 소비형 관광 시스템을 성찰하고, 지역과 깊게 연결되는 '관계형 여행'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6일 저녁 강원도 동해시 묵호 여행책방 '잔잔하게'에서 열린 평화운동가 임영신 작가(이매진피스 대표)의 북토크다. 여행의 본질적 의미와 지속 가능성을 묻는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 임 작가는 이날 "여행은 풍경의 소비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지도를 그리는 책임 있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관계 맺는 여행'의 시작

▲임영신 작가밝은 모습으로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작가 ⓒ 조연섭
기후위기를 주제로 강의를 준비한 임 작가는 최근 팔레스타인 세바스티아 마을 경험을 화두로 던졌다. 이스라엘 군의 통제로 올리브 농장을 수용 당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한국 여행자에게 보여준 환대와, 귀국 후 들려온 농장 강제 수용 소식은 여행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마주 앉아 빵을 나눈 사람의 삶은 나의 삶과 연결된다"며, 이를 '장소감'이라 정의했다. 여행지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적 배경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과 시간 속에 스며들 때 비로소 '관계 맺는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묵호 역시 여러 번 돌아오고 싶은 도시가 될 때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현행 관광 행정의 한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이어졌다. 임 작가는 한국인의 등반 스타일을 '속도 중심'으로, 네팔의 산행을 '고도(적응) 중심'으로 비유하며 "더 많이, 더 자주 떠나는 여행에서 덜 자주 가더라도 더 오래 머무는 여행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가뭄 시기에 관광객의 물 사용량(주민의 3.3배) 데이터를 근거로 호텔 용수를 제한한 사례를 언급했다. 단순히 '방문객 수'라는 숫자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여행자가 지역에 남기는 탄소 발자국과 쓰레기 양 등 실질적인 영향을 데이터화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덜 자주 떠나고 더 오래 머무는 여행"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됐다. 임 작가는 "현재와 같은 이동 방식을 40% 이상 줄이지 않으면 지구 온도 1.5도 상승 저지선은 불가능하다"며 많이 이동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책임을 지는 '기후여행자'로 거듭날 것을 제안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적 여행의 원칙을 제시했다. "대안적 여행 사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덜 자주 떠나고 더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관광은 재방문의 일상화가 필요하죠. 일회성 관광보다 지속적 관계 맺기도 중요합니다. 또한 대규모 관광보다 지역 공동체의 서사가 담긴 골목 걷기 등 지역 기반 복제 불가능한 지도 활용이 필요합니다."
임 작가는 묵호에서 발견한 희망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꼽았다. 현장에서 발견한 사례는 문화발전소 공감이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으로 동해 어달, 대진, 노봉 주민들과 직접 만든 '어대노 스토리북'과 지역 기반 지도와 채지형 작가가 참여한 '라면 먹고 갈래' 프로그램 등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시도는 그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주도해야 생명력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임 작가는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남겼다.
"당신의 여행은 누구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묵호를 배경으로 열린 이번 북토크는, 우리가 서 있는 장소와 우리가 떠나는 목적지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