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알고 판단함'이다. 조금 풀어서 말하면 실제와 다르게 보고, 듣고, 기억하거나 해석해서 틀리게 믿는 상태이다.
이번에 읽은 유혜연 작가의 <유쾌한 착각 여왕>(2026년 2월 출간)은 제목처럼 소란스럽고도 다정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살다 보니 알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짝이는 젊음의 시간 뿐 아니라 중년에서 노년으로 건너가는 지금의 시간도 더없이 빛나고 소중하다는 것을.
책 표지에는 KBS <개그콘서트> 연출을 맡았던 박종민 PD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이 책엔 대본도 없고 설정도 없는데 왜 이렇게 웃기고 찡한지 모르겠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책의 온기를 짐작하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빵 터져서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자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한 마디 던졌다.
"아니,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렇게 웃어?"
"자기도 한 번 읽어봐. 너무너무 웃겨."
삶이 무미건조해졌다면, 혹은 웃고 싶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웃음 버튼이 저절로 눌린다. 이 책은 '은퇴 부부의 동거 일기', '손녀랑 할미랑', '가족, 내 삶의 합창단', '나는 이제 유쾌한 할머니를 꿈꾼다' 등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쾌한 착각 여왕유혜연 작가 출간책 ⓒ 황윤옥
"이거 등솔 맞아?"
몇 년째 수건걸이 옆에 걸려있는 등솔을 설마 못 찾았을까 싶었지만,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이 들고 있는 건 변기 옆 구석에 박아둔 변기 솔이었다.
<콩깍지가 벗겨진 자리 중> p.43
작가의 남편이 샤워할 때 등솔을 써야겠다는 말을 한다. 갑자기 등솔을 찾는 남편이 하필 들고 물어본 것이 변기 솔이라니. 이 대목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집안일에 서툴다지만 그걸 구분하지 못하다니, 내 안에 있던 우울이 한방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박장대소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방송국 PD로 은퇴한 작가의 남편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친구 남편도 S사 정년 퇴임 후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30년을 넘게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딸이 이민을 결정한 뒤로는 손녀의 눈빛만 마주쳐도 눈가가 젖어 들었다. 이 사랑스러운 얼굴을 이제는 볼 수가 없겠구나. 또랑또랑 "할미!"하고 달려오던 목소리도 이제는 머릿속에서만 들리겠구나. 그 생각 하나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을 흔들었다. <손녀가 떠난 자리 중> p.113
작가는 두 딸의 엄마였다가 한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다. 오십 대 초반 할머니가 되어 9년간을 지극정성으로 불면 날아갈까 안으면 터질까 노심초사 손녀를 돌보아 주었다. 그러던 손녀가 미국으로 떠나고 나면 그 허전함과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감히 이해가 되었다.
자녀를 키울 때의 마음과 손주를 키울 때의 마음은 아주 다르다. 부모일 때는 책임과 의무로 키운다면 조부모일 때는 온전한 사랑으로 키운다. 조부모 육아를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 역시 손주를 6년간 돌보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이 백 퍼센트를 넘어 만 퍼센트는 이해됐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귀에 맴도는 순간,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하루종일 꿋꿋하게 버티던 서운함이 그 목소리에 씻겨 단숨에 흘러내렸다. 나는 수화기 옆에 그대로 주저앉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푸바오 조카들 중> p.159
푸바오랑 몸무게가 맞먹는 두 조카 이야기다. 작가의 생일을 가족이 잊어버리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지나가자 평생 통틀어 가장 우울하고 시린 날이었다. 집을 견디지 못하고 백화점으로 향해 비싼 정장을 홧김에 샀다고 한다. 작가는 집으로 돌아와 전화 자동응답기에 남겨놓은 두 조카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호주에 이민 간 푸바오 조카들이 챙기는 생일 축하가 얼마나 고맙고, 잊어버린 곁의 식구들은 또 얼마나 섭섭했을지.
"선생님,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선생님 나이는 왜?"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서 우리 데리고 못 뛰실까 봐서요."
<글쓰는 배꼽 중> p.212
작가는 사랑하는 손녀를 미국으로 보내고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독서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수업 중에 창밖에서 화재 경보 사이렌이 울렸을 때의 대화다. 다행히 오작동이라는 안내가 흘러나왔지만, 아이들은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때 젊은 척하며 던진 작가의 대답이 또 한 번 배꼽을 잡는다.
"선생님도 뛸 수 있거든!"
초등학교 6학년 때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작가였다. 나의 생활기록부에도 그런 답이 적혀져 있었다. 나 역시 한때 그 꿈을 적어 냈다. 결국, 작가는 그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까지 9년간 돌봐주었으니 '현모양처' 상패를 받아 마땅하다.
현실을 비틀어 다정하게 바라보는 힘, 그 착각이 우리를 다시 웃게 한다. 작가에게 남은 건 '게을킹'이라 부르는 남편과 눈망울 초롱초롱한 독서팀 아이들이다. 앞으로도 유쾌한 할머니로 살아가길 응원한다. 나 역시 그 뒤를, 조금 시끌벅적하지만 다정하게 따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