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뉴욕의 신생 투자연구소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가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라는 제목의 짧은 보고서 하나를 공개했다. 가상의 시나리오로 작성된 보고서 내용의 핵심은 2028년에 미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
위기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기계 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가장 희소한 자원인 인간 지능의 가치가 추락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 전반에 복합적인 위기가 찾아온다는 시나리오다. 이 보고서는 향후 2년간의 흐름을 살피면서 2028년도 미국의 경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 2026년 초부터 대량 해고가 시작되어 2028년 실업률은 10.2%에 달함
▲ S&P500지수는 고점(2026.10/8000) 대비 38% 하락함
▲ AI의 도움에 힘입어 유령GDP 즉 국민 회계에는 포함되지만, 실물경제에는 반영되지 않는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함
▲ 일자리를 잃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플랫폼, 서비스 영역으로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해당 영역 임금 수준이 하락하고, 저임금 구조가 경제 전반에 고착됨
▲ 중산층의 안정적 소득을 전제로 설계된 신용대출의 채무 불이행 건수가 빠르게 늘면서 약 13조 달러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붕괴 조짐을 보임
위기는 세 부문으로 진행된다.
① 실물 부문 : 인공지능 역량이 향상되면서 고용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며, 기업 이익이 줄어든다. 기업은 수익 증대를 위해 AI 투자를 더 늘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② 금융 부문 : 소득 감소로 부채 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채무 불이행률이 늘면서 금융회사 손실로 증가하고 신용 경색이 발생한다.
③ 정부 부문 :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정부 세입은 감소하는 반면, 실업수당 지급 등 세출 압박이 늘어나면서 정부 부채는 계속 증가한다.

▲경제위기의 세 국면(실물, 금융, 정부 영역)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 Citrini Research
실물 부문의 위기가 금융 영역으로 옮겨붙으면서 시스템 위기로 전환되고, 정부가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기존 흐름과 딴판인 상황 전개에 속수무책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확장하면서 사회경제에 미치게 될 변화상을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AI 확산→인간노동 대체→실업 확산→소비 위축→기업 수익 악화→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기계와 인간을 대립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건 낯설지 않다. 경제 위기는 공급 부족이 아니라 유효 수요 부족에서 비롯한다는 케인즈 경제학의 기본 공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보고서가 발표된 다음 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고 적시된 기업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했다는 점이다. 신용카드회사(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배달 앱 등 플랫폼 기업(도어대시, 우버), 글로벌 자산운용사(블랙록)가 망라되어 있다.
이 회사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지능은 지급결제 수수료를 최소화할 방안을 탐구하고, 스테이블코인이 신용카드보다 훨씬 나은 결제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간들에게 알렸다. 그로 인해 거래 및 중개수수료가 수익 원천인 카드회사, 통신망 사업자 등 지급결제 시스템에 연결된 회사들이 도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지급결제 방식의 변화 : 100달러를 받았을 때, 수수료의 차이를 보여줌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 Citrini Research
최근까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거래망을 독과점함으로써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소비자에게 가장 빠르고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할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배달원에게 이동 거리가 가장 짧고 수수료가 높은 주문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들이 누리던 특권을 무너뜨렸다.
플랫폼 기업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소비자는 인공지능이 제시해 주는 가장 최적화된 방안을 따르면 된다. 음식 배달원은 특정한 플랫폼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플랫폼은 넘치게 많고 각자 희망하는 주문을 고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여행, 쇼핑, 음식 배달, 이동 등 소비의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한다.
통계 자료에 기초해 분석한 내용도 없고, 엄밀한 검증을 거친 것도 아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이 엉성한 보고서가 상장회사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사회관계망(SNS)에는 이 보고서 내용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AI는 다양한 방식으로 최적화를 수행할 수 있고 비용 또한 매우 적다. 수십 년에 걸쳐 육체노동을 대체했던 산업혁명과 달리, AI 혁명은 급격한 변화로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코딩,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AI로 인한 혁신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일부 업종이 이러한 혁신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정부는 AI가 의도치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심사숙고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실제보다 과장됐다.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AI가 제공하는 저렴하고 풍부한 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AI가 맥락 파악 능력과 예측 능력이 부족하며, 이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한다.'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해 인공지능의 발전을 억제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세금을 활용해 일자리 감소를 줄이거나 특정 산업을 보호하거나 나아가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도 있다.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인한 소비 위축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고서의 예측과 전망에 대한 견해 차이는 크지만, 한 가지 수렴하는 지점이 있다. 의회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이 현실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느림보 정책 대응, 과도한 로비와 당파 싸움으로 인한 교착 상태를 바라보며 워싱턴 정가가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을까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나라나 정치가 가장 큰 걸림돌인 모양이다.
인공지능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재편해가고 있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도래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다. 새것은 이미 도래했는데 낡은 것은 현실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자산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줄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현존하는 어떤 시스템도 이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희소했던 자원이 풍족해지는 세상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적시에 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인류는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