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kellysikkema on Unsplash
영국에 살던 시절 한 통의 우편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낸 지방세가 어디에 쓰였는지를 항목별로 정리한 문서였습니다. 도로 유지비, 교육 예산, 공원 관리비까지 금액이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합계는 내가 낸 세금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세부 항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분명합니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과, 내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용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지서는 단순합니다. 전기를 얼마 썼으니 얼마를 내고, 가스를 얼마 썼으니 얼마를 내라는 식입니다. 숫자는 정확하지만,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단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비용이 포함됐는지, 어떤 설비와 어떤 위험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소비자는 가격을 지불하지만, 구조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불신이 시작됩니다.
전기요금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가격이 높거나 낮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료비가 올랐다는 설명은 있지만 계통 유지 비용은 무엇인지, 예비 설비 비용은 왜 필요한지, 재생에너지 확대가 실제로 어떤 비용을 줄이고 어떤 비용을 늘리는지 소비자가 체감할 언어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전을 겪지 않는 대가를 매달 지불하지만, 그 비용은 고지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발전원 논쟁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어떤 전원이 싸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숨은 비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은 서로 다른 계산 방식을 비교하는 데서 멈춥니다. 그래서 같은 숫자를 두고도 누구는 싸다고 말하고 누구는 비싸다고 말하게 됩니다. 숫자는 많지만, 정보는 부족합니다. 정보의 비대칭은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비용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출은 금액과 무관하게 크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비용은 크더라도 받아들여집니다.
신뢰는 가격이 아닌 설명에서 생깁니다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력망은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정전이 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비용,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를 대비하는 비용, 날씨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 비용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용은 고지서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금은 결과만 보이고 이유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에너지 정책도 가격을 정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를 내야 하는지를 알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유지하기 위해 내는지를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총액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고지서에 '계통 유지비'와 '에너지 생산비'를 구분해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요금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발전원별 단가 논쟁도 단순한 숫자 비교가 아니라 조건과 전제까지 공개될 때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정보를 세부적으로 공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이해 가능한 수준의 구조를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도로세를 내면 길을 떠올릴 수 있고 환경 부담금을 내면 목적을 이해할 수 있듯이, 전기요금에도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의 모습이 담겨야 합니다.
에너지는 생활에 가장 가까운 공공 서비스이지만 동시에 가장 멀게 느껴지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숫자를 숨겨서가 아니라 의미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의 비대칭이 줄어들 때 요금 논쟁은 줄어들고 정책 논쟁은 선택의 문제로 바뀝니다.
신뢰는 가격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설명에서 생깁니다. 이제 에너지 고지서도 비용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에너지 컨설턴트입니다.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