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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숙·재생원 사건 피해생존자 국가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 (2025. 6. 10)
영화숙·재생원 사건 피해생존자 국가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 (2025. 6. 10)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영화숙·재생원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 기자회견 (2026. 1. 28.)
영화숙·재생원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 기자회견 (2026. 1. 28.)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난 1월 28일 한국전쟁 이후 60년대와 70년대 초에 영문도 모른 채 부산 지역 최대 집단 아동 수용시설인 '영화숙', 성인 부랑자 수용 시설인 '재생원'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첫 승소 판결을 받았다.

1950년대 정부는 '일정한 주거 없이 제처(여러 곳)를 방황하고 상습 구걸하는 아동'을 '부랑아'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발본색원', '수집'하는 정책을 펼쳤다. 수집된 부랑아들은 대체로 민간 위탁 시설에 수용되었다. 전국 40여 개 시설에 매년 2천~9천 명의 부랑아가 신규 수용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일제 강점기부터 존재해온 부랑자 수용 관련 법률(조선구호령, 조선감화령)을 1962년에 아동복리법, 생활보호법으로 개편하고 부랑자 단속 정책을 강화했다. 그 결과 1962년~1971년 기간에 단속된 부랑아는 매년 2만~3만 명 규모로 늘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민간 시설은 국가가 위탁한 아동을 거부할 수 없으며, 이는 국가가 직접 수용·위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법령에도 부랑자라고 해 영장 없이 체포·구속할 정당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

임시 수도 시절을 거친 부산에서도 1962년~1971년 10년간 누적 8640명이 시설에 수용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부산시와 위탁 계약을 맺은 영화숙·재생원에 수용되었다. 이들 중 181명의 생존 및 사망자가 국가로부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이 2025년 2월에 나왔다. 과거사위는 국가에 ①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 ② 트라우마 치유·계획 수립, ③ 암매장된 시신 발굴 등 조치, ④ 시설 수용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 및 배상을 위한 제도 정비 및 ⑤ 집단수용시설 관련 기록에 대한 전면적 직권 조사를 권고하였다.

야만의 시간과 공간, 가혹행위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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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조사에서 60년간 묻혀있던 영화숙·재생원의 진실이 드러났다. 재생원의 성인들과 영화숙의 10세 초중반 아동들은 낙동강 하천 부지 개간 작업, 영화숙 부지 내 대운동장 조성 작업, 축사 및 농장 작업 등에 강제로 동원돼 노역을 해야 했다. 군대식 편제와 규율로 통제·관리되며, 아무런 이유 없이 운영진·중간관리자에 의한 폭력·성폭력, 가혹행위가 반복됐다.

폭행으로 많은 사람이 장애를 입었다. 원생들은 물과 음식이 부족해, 축사에서 돼지 먹이용 음식물 쓰레기를 훔쳐먹거나 개구리, 소나무 껍질 등으로 연명했다. 약 3~4평 크기 방에 평균 15~30명, 많을 때는 50명까지 수용돼 지그재그식 칼잠을 자야 했다. 구타, 가혹행위, 질병으로 사망한 원생은 뒷산에 암매장됐다. 도망가다 걸리면 다시 죽을 만큼 맞았다. 죽거나 도망하는 것 외에는 이 생지옥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야만의 시간과 공간이었다. 이 지옥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암매장된 희생자들은 아직도 부산 신평동 영화숙 부지 뒷산에 묻혀있다.

과거사위의 결정 후 생존자 및 유족들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부산지방법원이 65년 만에 국가와 부산시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였다. 법원은 경찰, 영화숙·재생원 민간 단속반원이 위헌·위법하게 부랑아를 강제로 수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부모 등 동거 가족이 있음에도 강제 수용되었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조사대상자 181명 중 130명이 연고자가 있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이들 중 대다수는 평생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법원은 수용된 아동들이 운영자, 관리자로부터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 노동력 착취, 성폭력을 당한 사실, 질병과 부상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실,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원은 아동이었던 피해자들이 사망한 벗이 뒷산에 암매장되는 과정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승소했지만, 국가의 사과나 적극적 조치는 아직 없다

법원은,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 사건은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공권력이 적극 개입·지원하거나 묵인·방치함에 따라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위법성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담당한 법관은 판결의 선고 말미에 피해자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재판권을 위임받은 법관으로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러한 법관의 사과는 제도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며, 판결의 내용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어서 기관 차원의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법원이나 법관은 불법행위를 한 주체가 아니다. 법관에게 권한을 위임한 국민도 사과의 주체가 아니다.

국가와 부산시가 항소하지 않아 법원의 판결은 확정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사과나 과거사위가 권고한 적극적 조치는 아직 없다. '눈감기 전에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의 사과를 듣고 싶다'며 여전히 눈물로 호소하는 피해생존자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이들은 폭행과 가혹행위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입고 가족과 생이별하여 영원히 재회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교육받지 못한 결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들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국가에 이유를 묻고, 사과를 받고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렇다면

주로 1970년대 이후 기간에 극심한 인권침해가 이뤄진 형제복지원 사건이 영화숙·재생원 사건에 앞서 과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을 받았다. 시간이 더 흘러서야 더 앞 시대인 1960년대 영화숙·재생원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인정한 영화숙 피해자의 최초 수용 시점은 1960년이지만, 영화숙은 이보다 이른 1956년 3월 구호자 수용 사업을 목적으로 허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앞서 본 1950년대 대한민국의 부랑아 강제수용 정책에 비춰보면, 영화숙·재생원 이전에도 집단 수용기관 인권침해 사건이 존재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과거사위 결정과 법원 판결은 지금의 인권 기준에서 보면 영화숙·재생원, 형제복지원을 통한 국가의 부랑자 수용 정책이 위헌·위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60~70년대 그때에는 국가의 잘못이 밝혀지지 않았고, 가해자들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나라는 가난했고, 거리는 너저분했으며, 국가가 사회를 정화하겠다 하니, 남루한 차림의 누군가를 붙잡아 강제 수용하는 것쯤은 허용되는 일이었다. 그때는 맞았던 일들이 지금은 틀리다.

그렇다면 지금 맞는다며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 사실은 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장애인이라 하여 집단 거주시설에 가둬 놓고, 이들에 대한 학대가 이뤄지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허용하는 국가의 제도는 합헌·합법인가? 외국 국적의 노동자를 토끼몰이식으로 단속하고 구금하는 것은 어떠한가? 노숙자라고 하여 사회악 취급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며, 기차역 의자에 누울 자리 하나 없도록 하는 정책이 온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절한 반성 없이는 국가폭력의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상규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소속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편집위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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