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오솔길
- 박광배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풀씨가 뒤를 따랐고
나무가 길을 내었다.
들꽃들이 달려가자
벌 나비가 뒤를 쫓았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산새가 누군가를 부른다.
다람쥐 가족이 기어들었다.
노루가 돌아다보았다.
돼지가 고목에 몸을 부빈다.
풀섶을 헤치며 약초꾼이 나타났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해가 비추고 구름이 흐르고 달이 뜬다.
여전히 풀꽃은 나무들과 길을 떠난다.
저들과 하염없이 걷는다.
엄마가 막내랑 토방에 앉아
강낭콩을 까고 있는
오두막이 나올 때까지.
출처_시집 <서천 가는 길>, 상상인, 2024
시인_박광배: 1984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선집 <시여 무기여>에 <용평리조트>외 1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는 둥그런 게 좋다> <서천 가는 길>이 있다.

▲바람이 드나들며 모든 지나감을 안은 길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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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것들이 멀리 가지 않고 나를 바라볼 때가 있다. 실은 함께 걸어온 탓에 가능한 일이다. 하염없이 걷는 동안에도 바람이 불고 꽃이 핀다. 바람이 다녀간 길이 아니라 "바람이 다니는 길"이다. 걷고 또 걸어야 가능한 말이다. 나는 꾸준히 걷기로 한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므로. 그리고 바람과 꽃과 나비도 걷고 있다. 그게 바람과 꽃과 나비가 살아가는 일이므로. 살아가는 일들이 서로 멀지 않아서 둘러보면 가까이에 있다. 살아가는 일이 사랑하는 일과 멀지 않아서 함께라고 말해도 좋다. "엄마가 막내랑" 앉아 있는 "오두막"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함께가 아주 확연해지도록 함께 걷고 있다. (맹재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