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이 생수공장으로 지하수 고갈 피해를 입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 양지 작가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10월, 생수 업체의 지속적인 지하수 취수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경남 산청 지역을 방문했다. 이 지역에서는 1996년부터 생수 공장이 가동되어, 현재는 200m 간격의 공장 2곳에서 1300톤 이상의 지하수를 뽑아내고 있다. 30년 사이 마을 우물이 마르고 가정용 지하수가 폐쇄되었으며, 여름철 땀을 식힐 그늘이 되어주던 큰 나무가 말라죽었다.
그런데 2023년, 한 업체에서 취수량 증량 허가를 신청했다. 주민들이 삼장지하수보존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결성하여 반대 서명을 모으고 항의 기자회견까지 하며 거세게 반발했으나, 경상남도는 지난 1월 29일, 272톤 증량 허가를 승인하며 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불투명한 환경영향조사가 문제시 되었지만, 경상남도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반대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여성환경연대는 지역 신문 <지리산인>을 통해 대책위의 활동 소식과 투쟁의 주요 쟁점을 지리산권 주민들과 외부로 알려온 양지 작가를 지난달 29일 화상으로 만났다. 5년 전 지리산권으로 귀촌한 이후 지자체 소식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주민들의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윤주옥 지리산사람들 대표의 제안이 그를 산청으로 이끌었고, 지금은 윤 대표와 함께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물이 공공재라는 인식 사라져... 앞으로 다가올 위기 고려 안 해"

▲양지 작가는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으로 산청군 삼장면의 지하수 피해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지역언론 <지리산인>에 기사를 작성해 왔다. ⓒ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 양지 작가
"'지리산사람들' 회원으로 평소에도 지리산권의 생태계 파괴 현안에 연대해오고 있었어요. 지리산권의 문제는 지리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거든요. 그러던 중에 윤 대표님을 통해 산청 지하수 고갈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일을 하니, 마을 주민분들 인터뷰도 하고 대책위에서 만드신 자료들을 정리하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주셨어요."
양지 작가도 5년 전까지는 이른바 도시인이었다. 갈증이 나면 편의점에서 언제든 생수를 사 마실 수 있었다. 도시에서 생수 한 병을 사 마시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며 텀블러 사용을 늘렸지만, 물 문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료를 찾아보던 그는 물을 둘러싼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물의 소중함이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무엇이라도 기록해보기로 다짐했다.
"최근 UN에서 '물 파산' 보고서를 발행할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는 물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어요. 반면 한국은 생수가 소비재가 된 이후로 물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요. 그렇다보니 지하수 문제에 대한 공감대도 낮아진 것 같아요. 지자체나 정부부처도 비슷해서, 환경영향평가나 생수 취수 허가 절차에서도 앞으로 다가올 물 위기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글을 통해 산청의 지하수 고갈이 비단 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임을 알리고자 했다. 그가 중점을 둔 또 다른 쟁점은 지역내 고장난 민주주의였다.
기업은 마을 공동체의 물을 사유화한 대가로 선심 쓰듯 마을발전기금, 생수 제공,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제시했다. 작가는 기업의 약속이 생색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생수공장은 자동화율이 높아 규모에 비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더러, 지하수 고갈과 지반 침하 같은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표재호 삼장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말라버린 마을 샘물을 가리키고 있다. ⓒ 여성환경연대
하지만 당장의 이익을 앞세운 몇몇 주민들이 기업에 포섭되었다. 대체로 이장이나 사회단체장처럼 지역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밀실합의로 기업 측에 증량 동의서를 써주었다. 이들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다른 주민들은 지하수 피해 사실이 있어도 눈치를 봐야만 했다.
결국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렸다. 농업이나 식품 제조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생계를 지하수에 직접 의존하지 않는 주민들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는 현저히 부족했다. 산청군이 대책위의 목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도 주민들의 노력으로 언론이 해당 사안을 보도한 이후였다.
"지자체에서도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적 정의가 부재해요. 이런 일들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공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지자체가 얼마나 될까요? 공론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주민간의 갈등이 더 커지기도 하고요."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

▲삼장면 덕교마을 입구에 취수량 증량 허가 반대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이 붙어있다. ⓒ 여성환경연대
행정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 작은 지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의 부담은 오롯이 개개인의 몫이 되었다. 양지 작가 또한 누군가로부터 보복성 민원을 제기당할 위험을 늘 안고 있다고 했다. 대책위 참여 주민들 중 몇몇은 생계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이 싸움을 멈추지 않는 걸까.
"주민분들께 이런 투쟁을 해보신 적 있냐고 여쭤본 적 있어요. 다들 처음이라고 하셨죠. 지자체의 반응이 좋지 않으니 지치신 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잖아요. 공공의 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앞장서서, 안하시던 싸움을 하고 계시는 거죠. 자신들의 삶을 걸어가면서요. 이 분들이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면서, '탄광 속 카나리아' 같아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저도 '작은 거라도 하자, 이 문제를 더 알리자'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는 생수산업의 문제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만큼, 도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심각성에 공감하든 외면하든, 우선 문제를 인지해야 그 다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론과 여러 컨텐츠를 통해 이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만, 도시와 지역의 사람들이 연결의 감각을 회복하고 지역과 연대하게 될 것이라며, 스스로도 글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최근 또 다른 업체가 하루 지하수 670톤을 취수하는 생수 개발 허가를 취득했다. 기존에 강원도 고성 해양심층수를 취수해 만들어오던 생수를 수출용으로 전환하고 국내 판매를 위해 지리산 물을 취수하겠다는 것이다. 허가 취득 과정은 산청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진행되어, 지역사회 활동가들도 생수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을 뉴스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지리산권에서는 이미 하루 6300톤 이상의 지하수를 뽑아내고 있다. 산청의 증량분과 새로운 업체의 취수량을 더하면 7천톤을 거뜬히 넘는다. 제주도 전체 취수량의 1.5배 이상이다.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질수록, 지역의 수심은 깊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취수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와 물을 지키기 위한 지리산 주민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리산의 물을 지키는 주민들과 글을 통해 그들의 싸움을 세상에 알리는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이 시민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카나리아가 탄광에 고립되지 않도록, 생수 취수원 지역의 현실에 함께 공감하고 고민하는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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