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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를 하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 안대를 하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 자리잡고 있다.
안대를 하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안대를 하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 자리잡고 있다. ⓒ 이정민

서울 서초동. 이곳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 됐다. 권력과 자본, 그리고 법이 서로를 의식하며 공존하는 공간이다. 대형 로펌과 검찰청, 법원이 촘촘히 들어선 이 동네에서 대한민국 사법 권력은 오랫동안 자신만의 왕국을 구축해왔다.

그런데 대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점이 하나 있다. 그녀는 눈을 가리지 않고 있다. 공정한 판단을 위해 더 크게 보고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이며, 어떤 권력도 어떤 자본도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국민이 정의의 여신상에서 읽어내는 것은 다르다. 권력과 자본을 의식하며 판단하는 눈이라는 씁쓸한 냉소다. 상징은 그것이 놓인 현실을 반영한다. 현재 서초동의 현실은 여신상에 이런 의미를 덧씌우고 있다.

신뢰의 위기, 대법원은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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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냉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내란 사태,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와 재판 등에서 사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민 다수가 헌정질서 파괴로 받아들이는 사건에도 사법부의 판단은 더디고 모호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을 때, 많은 국민은 법리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거두지 못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난 법 앞의 불평등 논란도 마찬가지다. 판결이 국민 정서와 유리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초동 대법원'은 기득권과 강남 권력의 상징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법부는 여론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다수의 정서가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불신은 단순히 '국민이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성과 공정성의 외양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불신이다. 이는 제도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다. 국민은 눈을 뜬 정의의 여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고 있다.

대법원 대구 이전, 공식 안건으로

이런 배경 속에서 대법원 이전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비례대표)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시병)이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민주당, 혁신당, 기본소득당 등 총 13명이 초당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초에는 조국혁신당 대표인 조국이 직접 대구를 찾아 해당 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 이전 논의가 정치적 수사를 넘어 공식 입법 어젠다로 올라선 것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질의하고 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질의하고 있다. ⓒ 유성호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차규근 의원이다.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도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세종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왜 사법부만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사법부도 균형 발전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한다.

또한 이전 후 서초동 부지에는 청년과 무주택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짓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수도권 부동산 집중, 지방소멸, 사법 독립성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시도다.

차 의원이 대구를 후보지로 지목한 이유도 명확하다. "대구는 항일 민족정신의 도시이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민주주의 도시"라며, 수도권과 충분한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면서도 지리적 균형축을 형성할 수 있는 도시로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를 담아낼 최적지"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122조가 국토의 균형 있는 이용과 개발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주요 논거다.

대법원의 반대, 논리인가 기득권 수호인가

대법원은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현행 법원조직법이 대법원 소재지를 서울로 규정하고 있고, 이전 비용이 크며, 국민 사법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현행법상 서울로 정해져 있다'는 주장부터 그렇다. 법은 바꾸라고 있는 것이다. 차 의원이 발의한 것이 바로 그 법을 바꾸자는 개정안이다. 현상 유지의 이유로 현행법을 드는 것은 논리라기보다 변명에 가깝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세종 이전, 행정수도 완성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국가적 필요가 있다면 추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비용은 정책 결정의 변수이지 거부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사법 접근성 저해' 논리도 설득력이 약하다. 대법원은 대부분 법률심 중심이다. 일반 국민이 직접 대법원에 출석해야 할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소송은 전국 각지의 1심·2심 법원에서 해결된다. 대법원이 서울에 있어야 국민이 편하다는 논리는 실상을 외면한 말이다. 오히려 대법원이 서울에 있어서 가장 편한 것은 서초동의 대형 로펌과 법조 카르텔이다.

차 의원이 지적하는 더 깊은 문제는 사법부가 입법·행정 권력과 밀집한 서울에 위치한 구조적 편중이다. 삼권분립은 헌법 조문에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물리적·지리적 분리도 사법 독립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실, 국회, 대법원이 모두 서울에 몰려 있는 나라는 드물다. 권력기관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것은 그 기관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을 뜬 정의의 여신이 서초동에서 여의도 국회와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는 단순한 상징 그 이상의 문제를 내포한다. 사법부를 서울로부터 떼어 놓는 것 자체가 사법 독립을 위한 구조적 조건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대법원에 당부한다

대법원이 이전을 반대하고 싶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전 논의가 힘을 얻는 배경에는 단순한 균형발전 논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깊은 불신, 판결에 대한 분노, 기득권 구조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응축되어 있다.

눈을 뜬 정의의 여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넓은 시야가 아니라 국민이 그 눈에서 공정함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대법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전을 막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자성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국민 눈높이에서 납득 가능한 판결이 뒷받침될 때, 대법원은 어디에 있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도시다. 시민들은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반지와 비녀를 내놓았다. 2·28 민주운동 역시 이곳에서 시작됐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그것이 결국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는 불씨가 됐다.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시민이 정의를 세웠던 도시다.

사법부가 국민 곁으로 돌아오고자 한다면, 그 출발은 이런 역사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서초동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있다. 이제 그 눈이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그 답을 찾는 여정이 어쩌면 서울 밖에서 시작될 수 있다. 대법원이 강남의 법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법원임을 증명하는 길은 대구에서 열릴 수 있다.


#대법원이전#대구이전#차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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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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