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강원도 묵호에는 '사람의 파도'가 먼저 상륙한다. KTX 묵호역을 기점으로 여행자들은 골목을 오르고, 전망대에 서며, 시장을 지나 바다를 향해 걷는다. 특히 최근에는 '나 홀로 여행자'의 증가가 눈에 띈다. 혼자 걷고, 찍고, 머무는 여행이 묵호의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해는 과연 이들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근 묵호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북적이는 거리만큼 기대감도 커졌지만, 그 기대를 담아낼 '내실'이 충분한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논골담길 연구로 관광학 박사가 된 이광표씨는 묵호의 현재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묵호는 '속도'보다 '결'에 집중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성지(聖地)입니다."
편리함보다 '고유한 시간'을 찾는 여행자들, 이 박사는 묵호가 독립 여행의 성지로 주목 받는 이유를 접근성 개선으로만 보지 않는다. KTX라는 '속도'가 문을 열어주었다면, 여행자들이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편리함 너머의 '묵호만의 시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핵심으로 콘셉트, 스토리, 아이디어라는 '3요소'를 강조했다.
"관광지의 생명력은 고유한 서사에서 나옵니다. 시설은 쉽게 복제할 수 있지만, 지역의 정체성은 복제되지 않습니다."
묵호는 한때 '벽화마을'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고유의 풍경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최근 공간을 채우는 시설들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레저 시설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묵호의 진정한 경쟁력은 새로운 시설 확충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결'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를 넘어 '로컬리티의 서사' 복원해야
이 박사는 묵호의 본질이 화려함이 아닌 "삶의 애환과 생활의 결"에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현재의 개발 방식이 자칫 묵호의 '영혼'을 희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묵호가 다시 회복해야 할 핵심은 '로컬 콘텐츠'다. 어민의 역사, 시장의 온기, 골목의 기억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야 관광이 단기적 유행을 넘어 '재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구체적이다. 묵호 해랑전망대 앞에서 이마트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미숙(60) 대표는 관광객 증가에 따른 인프라 부족을 지적했다.
"관광 코스와 볼거리는 늘었지만, 정작 여행자가 편히 쉬거나 이동할 기반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특히 대중 교통과 휴식 공간의 확충이 절실합니다."
최 대표는 먹거리 역시 동해만의 특색을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메뉴보다 동해 특산품을 활용한 차별화된 관광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역민의 관심과 공공 기관의 체계적인 거버넌스와 지원이 맞물려야 함을 강조했다.
이 박사는 준비의 주체를 분명히 했다. 해답은 시설 확충이 아니라 동해 시민 스스로의 깊은 고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상인, 청년, 전문가가 함께 실험하고 대안을 찾는 '리빙랩' 활용을 제안했다. 타 도시의 성공 사례를 무분별하게 복제하는 '껍데기 행정'에서 벗어나, 묵호가 묵호를 연구하는 '자기 해석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동해가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5가지 과제 전문가 진단과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동해가 직면한 과제는 거창한 대규모 개발보다 '디테일의 완성'에 가깝다.
주말 혼잡 구간 안전 확보 및 순환 셔틀 운영, 정류장 안내 강화를 위한 보행 중심 교통 체계 재설계, 벤치, 실내 대기 공간, 화장실 등 기초 편의 시설 개선을 통해 쉼표가 있는 마을 만들기, 동해 특산물을 활용 공동 서사와 브랜딩 구축으로 동해 먹거리 브랜드화 하기, 분절된 관광지를 하나의 이야기 흐름으로 연결하는 스토리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이해 관계자들이 상시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참여형 리빙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묵호는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제는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행자는 결국 도시의 '결'을 기억한다. 그 결을 지켜낼 때, 묵호는 진정한 독립여행의 성지로 거듭날 것이다.

▲묵호 발한삼거리 사진강아지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니던 시절, 1960년대 묵호 발한 삼거리 ⓒ 동해문화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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