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민중행동 '내란수괴 윤석열 법정최고형 선고 촉구'전국민중행동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엄중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는 법정최고형을 선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오늘 전해진 내란 사건의 우두머리, 윤석열 피고인에 대한 선고 소식은 우리 사회에 깊은 허탈감과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재판부가 내놓은 감형 사유들을 지켜보며 많은 시민은 묻습니다. "법이 세우고자 하는 정의의 저울은 과연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가?"
양형(量刑)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범죄의 책임 정도, 사회적 파급력, 재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죄에 상응하는' 형을 정하는 것입니다. 즉, 감형은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편의적 수단이 아니라, 형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밀한 사법 과정입니다.
하지만 지귀연 판사가 제시한 네 가지 감형 사유는 양형의 본질적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국민적 법 감정과의 거대한 괴리를 드러냈습니다.
국가 근간 흔든 범죄에 '초범'이라는 면죄부
일반적인 민생 범죄에서 초범 여부는 참작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란'은 국가 질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 범죄입니다. 헌법 체계를 파괴하려 한 행위 앞에서 "처음이라서"라는 논리가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범죄의 무게에 비해 '초범'이라는 기준은 너무나도 가볍고 궁색해 보입니다.
재판부는 오랜 공직 생활을 감경 사유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공직자는 누구보다 헌법과 법치를 수호해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지닌 자리입니다. 그 책무를 정면으로 배신하고 권력을 사유화해 내란을 획책했다면, 공직 이력은 감경이 아닌 '가중 처벌'의 근거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린 자에게 과거 이력을 훈장처럼 달아주는 것이 우리 사법부의 정의입니까?
현대 사회에서 65세는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연령입니다. 유엔 기준으로는 '장년'에 해당하며, 피고인 본인 또한 이 나이에 최고 권력자로서 국정을 수행했습니다. 범죄를 모의할 때는 청년 못지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처벌 앞에서만 '나약한 노인'이 되는 모순을 재판부가 그대로 수용한 꼴입니다.
범죄가 미수에 그쳤거나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행위가 품었던 '위험한 의도'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내란 의도가 명백했고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그 실패는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과 민주주의 시스템의 저항 덕분이지 피고인의 선의 때문이 아닙니다. 실패가 감형 근거가 된다면, 앞으로 법이 수호해야 할 가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국민은 '살아있는 정의'를 원한다
양형은 법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법전 속에 박제된 문구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살아있는 정의'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이 양형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린 것인지, 아니면 제도의 빈틈을 파고든 '권력형 봐주기'인지 우리 사회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상식을 배신할 때, 법치는 신뢰를 잃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귀연 재판부가 제시한 이 감형 사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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