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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현관문 밖까지 웃음소리가 넘쳤다.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회의가 한창이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강신석 목사의 가족이 내어준 이 공간에서, 이들은 오는 26일 열릴 창립총회를 앞두고 1박 2일 워크숍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해 당사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가까지 열매 집행부 7명이 모여 총회 당일 식순과 업무 분장, 치유 프로그램 준비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다. 무엇 하나 편하게 정해지는 법이 없었고, 식탁에 둘러 앉은 이들은 연신 머리를 맞댔다. 이들의 중심에는 성폭력 피해 증언자이기도 한 김복희 열매 대표가 있었다.

이들의 뜨거운 논의는 이제 막 공식 단체로 피어나려는 열매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7명이라는 한정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아직은 할 수 없는 일이 차츰 정리되기 시작한 것. 피해자 15명과 집행부 7명을 넘어 어떻게 연대자들과 시민들로 열매의 동심원을 확장할 수 있을지, 그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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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를 겪어야만 열매인가?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는, 연대자들은 또 열매가 아닌가? 이런 질문들 속에서 창립을 앞두고 모든 회원과 함께하고자 한다." - 윤경회 열매 간사

회의 직후 열매의 김복희 대표(5·18 성폭력 피해자)와 윤경회 간사(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를 인터뷰했다.

자조모임에서 단체로 거듭나기까지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2024년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했을 때의 모습.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2024년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했을 때의 모습. ⓒ 소중한

열매는 2024년 8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조 모임으로 출발했다. 극심한 낙인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40년이 넘도록 서로의 얼굴도, 생사 여부도 몰랐다. 그러다 그해 4월 처음으로 얼굴을 확인하고는 부둥켜안았다. 그곳에서 이들은 피해 회복의 씨앗을 발견했다. 김복희 대표는 자신처럼 피해를 겪은 여성들을 대면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조 모임에서 출발한 열매를 지켜본 이들은 창립총회까지의 시간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5월, 김선옥씨가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용기를 얻어 실명과 얼굴을 내걸고 5·18 성폭력 피해를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5·18 진상규명법'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발생 등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 포함됐고, 2023년 12월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의해 5·18 성폭력 피해가 공식 인정됐다. 이를 토대로 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윤경회 간사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4과 3팀장으로서 5·18 성폭력 조사를 담당했고, 위원회 활동 마무리 후에도 열매의 간사로서 피해자들의 곁을 지켰다. 위원회 근무 전 민간단체 일했던 윤 간사는 "많은 일을 헌신으로 도맡아 했던" 기억 때문에 다시는 이러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열매는 그 굳은 결심마저 뒤로 물리게 만들었다.

김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윤 간사의 손을 꼭 잡았다. 윤 간사는 자신의 다른 손을 내밀어 그런 김 대표의 손을 맞잡았다. 김 대표는 "우리 열매가 그늘에 있지 않고 항상 열려 있는 열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광주가 고향이라 5·18을 직접 겪었고, 그 피해를 보았다. 가정을 이끌고, 식당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한 번씩 집회에 서있기도 했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다들 연세도 있고, 몸이 안 좋으시거나 생활이 어려우신 분도 계신다. (피해를 공론화한 뒤) 20개월을 부대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고 열매 활동가들·연대자들과 함께 국가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것이다. 이 사례가 타국가들에도 귀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대에 발맞추면서,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아프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아플 수 있다." - 김 대표

국가로부터 피해를 겪은 이가 "국가를 위해" 나서기로 마음 먹은 이 상황을, 김 대표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좋은 이웃이자 국민이 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할 일이 많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2024년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하던 날, 피해자 김선옥씨가 모임에 참석한 서지현 전 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2024년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하던 날, 피해자 김선옥씨가 모임에 참석한 서지현 전 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 소중한

열매의 공식 단체명은 '과거사 젠더폭력 진실과 치유의 길을 여는 5·18 열매'로 정해졌다. 이들은 광주만이 아닌 전국 조직으로, 5·18 성폭력 피해를 넘어 과거사 젠더폭력으로 그 목표를 확장했다. 여기엔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김 대표)는 의지가 담겼다.

"우리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분들이 있다. 그 용기에 우리도 답해야 한다. (열매의 대표로 나선 지금) 사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열매를 구성한) 이렇게 훌륭한 여성 분들이 계셔서 너무너무 신난다. 이렇게 서로 대화해 얻어낸 결과를 공식화하고 행하는 일이 빛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 김 대표

열매에는 2024년 12.3 내란 직후 아픈 몸을 이끌고 택시에 올라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으로 향했던 피해자도 속해 있다.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과 국가폭력은 열매에도 더욱 절실히 다가왔다.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이번 12.3 내란으로 (국가폭력이) 끝나지 않았구나, (비상계엄이) 실행됐다면 언제든 구렁텅이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내란 후 복잡한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건 동조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할 일이 많다. 열매가 (더 나은 대한민국에) 일조하고 싶다." - 김 대표

"다 돌아가시면 무슨 소용? 속도가 윤리"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구성원들이 오는 26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11일 오전 회의를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구성원들이 오는 26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11일 오전 회의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열매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피해 증언자들의 치유와 회복, 나아가 국가 최고 책임자의 사과도 목표로 하고 있다. 열매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46주기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5·18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윤 간사는 "대통령의 진심 어린 메시지를 통해, 아직 말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내가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특히 "(치유를 위해선) 무엇보다 속도가 윤리"라고 강조했다.

"두 번이나 암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세 번은? (5·18 성폭력 피해자인) 이남순 선생님은 이번에 네 번째로 암에 걸렸다. 내가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할 때 의료 기록상 갑상선암, 난소암, 직장암에 걸렸고 항암 치료로 이를 모두 이겨낸 분이었다. 그런데 2024년 4월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처음 만나고, 그로부터 몇 달 뒤 췌장암에 걸렸다. 속도가 윤리다. 우리가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위원회에 요구했던 것도 이것이다.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서 이뤄지는 치유와 회복이 무슨 소용인가." - 윤 간사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윤 간사는 지난해 12월 췌장암 항암 치료 중 지팡이를 짚고 열매 집담회에 참석한 이남순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열매에 몸담은 윤 간사에게 그날은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남아 있다.

"당연히 나오지 못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 열고 들어오시는 이남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부둥켜 안고 한참 울었다.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한다는, 그런 마음인 거다. 나는 그런 용기는 못 낼 것 같다." - 윤 간사

윤 간사는 "열매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식 창립하더라도) 안정적인 지원책이 없기 때문에 민간에서 하는 자원봉사로 운영된다"면서 "장기적으로 성평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에 지원책을 요구해 열매의 일이 국가의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

열매 창립일인 오는 26일, 마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3기도 출범한다. 윤 간사는 "(진화위 3기에서도) 과거사 젠더폭력에 대한 조사 신청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과거사 젠더폭력에 대해) 훈련된 조사관이나 연구자가 많지 않은데 국가 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열매에서 도울 수 있다"면서 "그런 뒤 치유 등을 위한 정책과 제도 개선을 국가에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한 문턱을 넘는 것도 열매가 해야 할 역할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열매의 창립총회는 오는 26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관련 기사] '5·18 열매' 연재 https://omn.kr/2gu0m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가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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