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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안녕!'이란 말이 있다. 별일 없었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잘 어울린다. 가만히 차도에 서 있다가 사고당하고, 편안한 실내에서 차 마시고 밥 먹다가 차가 돌진해서 사고당하고, 노점상에서 채소를 팔다가 사고당하는 일들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나도 설날에 '밤새 안녕'이란 말을 경험하고 나니 이 말이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설 며칠 전에 작은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설날 무슨 계획 있으세요. 쌍둥이가 여행 가고 싶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별 계획 없어. 신정 쇠었으니 그냥 떡국이나 끓여 먹고 집에서 쉬려고."
"그러면 저희와 같이 고성으로 1박 2일 여행 가실래요? 다행히 숙소를 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랬다. 사실 설날에는 조용히 집에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쌍둥이 손자와 겨울 바다도 보고 수영장 있는 리조트에서 놀다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거기다 숙소가 설악산 울산바위가 보이는 리조트라고 하지 않는가.

▲고성 봉포 해수욕장 ⓒ 유영숙
아들네가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설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9시경에 출발하였다. 다행히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도로는 막히는데 강원도로 내려가는 차는 막히지 않고 잘 달렸다. 리조트 입실이 3시라서 가는 길에 용대리 진부령 식당에서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 더덕구이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가끔 집에서 황탯국을 끓여 먹는데 전문식당에서 먹으니 국물맛이 더 진하고 맛있었다. 식사 후에 바닷가에 가서 등대를 보며 겨울 바다를 즐겼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속초 관광수산시장(이하 속초 시장)에 갔다. 사고는 여기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응급실로 갔다

▲걸려 넘어진 카스토퍼주차장에 설치된 주차 방지 차 멈춤턱 ⓒ 유영숙
속초 시장 주차장이 만원이어서 주차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며느리와 장을 볼 계획이었는데 주차하는 동안 빨리 다녀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남편과 내려서 시장에 갔다. 속초 시장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닭강정과 새우튀김을 사고 주차 정산하고 며느리에게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주차한 차가 내려올 것 같은 주차장 입구 쪽에 남편과 서 있다가 아들 차가 내려와서 그쪽으로 가려고 급하게 한 발을 떼는 순간 바닥에 꽈당 넘어졌다. '철퍼덕' 넘어졌다는 것이 맞다.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카스토퍼(Car Stopper), 즉 '주차 방지 차 멈춤 턱'에 걸려 넘어진 거다.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손을 짚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이 바닥에 먼저 닿은 것 같다.
입안에 피가 고이고 이가 씹혔다. 이가 부러진 거다. 얼굴도 벗겨져서 피가 났다. 놀란 아들이 차에서 내려서 응급실 있는 병원을 검색했더니 '고성 의료원'이 나왔다. 휴지로 입을 막고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치과 의사가 없어서 진료할 수 없다며 119구급차를 불러서 강릉 아산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들이 119에 전화하니 다행히 병원으로 온다고 했다.
15분여 뒤에 구급대원 세 명과 구급차가 도착하여 사고 경위, 아픈 부위 등을 물어보고 상처를 살피고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주었다. 그 시간도 꽤 걸렸다. 가장 가까운 큰 병원인 강릉 아산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해서 결국 치과가 있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아들은 어린 손자들을 숙소에 내려주고 천천히 따라오기로 하고 남편과 119구급차를 탔다. 오후 3시경에 사고가 났는데 속초에서 원주까지 3시간 정도 걸려서 오후 6시가 넘어서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아래 원주병원)에 도착했다.
119구급차에서 세 시간 대기하며 드는 생각
평생 119구급차는 처음 타보았다. 구급차 안에는 환자 침대와 보호자 의자 그리고 구급대원 의자 두 개와 각종 약품 등이 있었다. 생각보다 좁았다. 아주 작은 모니터에서는 '구급대원을 폭행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계속 나왔다.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사람이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9구급차에서 대기중인 기자구급차에서 3시간 이상을 대기한 후에야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유영숙
이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으니 바로 이송되어 치료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타고 온 구급차 말고도 여러 대의 구급차가 주차장에 서 있었다. 구급차 침대에 누워있는데 입 안에서 피가 계속 나왔다. 구급대원이 응급 조치를 해 주었지만, 아프기도 하고 불편했다.
병원 직원이 구급대원에게 많이 기다려야 할 거라고 말하며 환자 이름, 다친 정도, 복용하는 약, 기저 질병 등을 체크하고 갔다. 그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휴일이라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다려도 너무 많이 기다린다. 작년 봄 의료 대란이 일어났을 때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하는 환자 소식을 들으며 왜 저런 일이 일어날까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구급차에서 몇 시간 기다리는 동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 환자를 먼저 받느라 내 치료 순서는 오지 않았다. 구급차에서 대기 시간이 3시간이 지나 오후 9시가 넘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이 도착했다. 밖에서 보니 골절된 환자, 의식 없는 환자 등 환자 여러 명이 왔다고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응급실에서 들어오라는 소식이 정말 반가웠다.
구급대들이 내가 치료받으러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치료 잘 받으세요"라며 돌아갔다. 우리도 우리지만 그때까지 저녁 식사를 못한 구급대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응급실에도 처음 간다. 응급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 동행이 가능했다. 아들이 함께 들어가고 남편은 바깥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가장 심한 입 안 치아 부분을 지혈하고 얼굴과 무릎, 팔 등 타박상을 치료해 주었다. 치료 후에 또 기다리다가 얼굴 턱과 무릎 엑스레이를 찍었고 항생제 주사와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했다. 나는 2년 전에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할 때 파상풍 주사는 맞아서 제외하고 항생제 주사만 맞았다.
치과 치료는 언제 받을 줄 몰라 또 기다렸다. 30여 분 기다렸는데 치과 치료 받으러 가라고 했다. 직원을 따라 미로 같은 병원 안을 돌아 치과에 올라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입 안을 살펴보더니 입술과 잇몸을 꿰매야 한다고 하셨다. "부러진 이는 다시 붙일 수 없고 남은 이를 빼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주에도 치과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치아를 잘 관리했다고 칭찬받았는데 누가 사고로 이가 부러질 줄을 알았을까.
치과에서 입술 다섯 바늘과 지혈을 위해 잇몸은 두 마늘을 꿰맸다. 마취 주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치료해 준 의사 선생님께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였다. 다행인 건 찍은 엑스레이로 턱관절도 이상 없고 무릎도 뼈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퇴원 수속을 받는 것도 기다림이 필요했다. 결국 6시경에 원주병원에 도착하여 구급차에서 3시간 대기하고 치료받는데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후 11시 30분경에 모든 것이 끝나 인천 집으로 올라왔다.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난다
구급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별생각이 다 들었다. 놀러 와서 119구급차에 실려 갈 줄 누가 알았을까. 사고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놀러 오지 않았으면 사고는 안 났을까? 아이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고 천천히 시장에 올걸. 바닥을 잘 볼걸.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도 노인이란 생각을 안 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든 모양이다.'
그러나 사고는 이미 일어났고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이번 일로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자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만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부푼 입술과 얼굴 타박상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고, 꿰맨 입술에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해서 조금 걱정되었지만 나을 거고, 앞니 세 개도 임플란트 시술로 새 이를 심을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연휴가 끝나면 얼굴 타박상 치료와 치과 임플란트는 오랫동안 치료해야 될 거다. 남편을 보면 임플란트 2개 하는데 반년도 더 걸렸다.
119구급차를 타보니 무료로 응급 환자를 멀리까지 이송해 주는 구급대원이 고마웠다. 더불어 설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분들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과 의사 선생님들이 얼마나 귀한지 느끼게 되었다. 지방에도 의사가 많아서 환자들이 위급할 때 제시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응급실 뺑뺑이로 죽는 환자도 없어야겠고 환자들이 편하게 치료받았으면 좋겠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잘 협의하여 가장 먼저 환자를 생각하는 의료정책이 만들어지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