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29일간 DMZ와 파주 인근에서 열릴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은 전쟁과 분단, 혐오와 차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연속 기고 '다시 문학이 말을 건넬 때'는 분단과 경계, 평화,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라는 다섯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의 문학이 경유해 온 고통의 역사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흔히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리되지만, 그 핵심에는 보다 가슴 아픈 질문이 숨겨져 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는 것. 전쟁과 폭력, 국가의 명령과 체제의 강제가 한 개인의 몸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고, '이동 당한 자'의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소속과 언어, 이름조차도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게 된 채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모국어와 생존을 위한 언어 사이에서 그들은 매 순간 혼란을 경험한다. 낯선 언어의 이방인들 사이에서 매 순간 혼자라는 사실을 감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단지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의 좌표가 재배치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마저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지 않을까.
이 '디아스포라의 감각'이 최근 유난히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한 장면이 우리 앞에 '목소리'의 형태로 도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북한군 포로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은 먼, 어쩌면 '나'와는 별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타국의 전쟁이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게 된 이야기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가의 명령으로 인해 전쟁터에 떠밀린 두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낯선 이국의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들에게 전쟁은 선택이 아닌 통지였고, 의지가 아닌 명령이었다.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내몰린 전장 한복판에서도 그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었고, 죽음 앞에서조차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는 짧은 문장을 남길 권리조차 갖지 못했다. 유언이란 결국 자기 삶의 마지막 주어를 회복하는 일인데, 그들에게는 그 주어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들이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전장의 한복판에서 부상으로 의식을 잃어 포로로 잡힌 이후의 일이다. 아이러니. 적의 통제 아래 자신의 몸이 놓이고서야, 철조망과 규율 속에 갇힌 신분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처음으로 "나는"이라는 말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기도 했기에, 그 순간부터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다시 삶이 위험해지는 역설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중의 아이러니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도, 목숨도, 아무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이다.
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새겨 넣을 언어 필요

▲1월 27일 방영한 MBC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군"의 한 장면. ⓒ MBC
북한군 포로 리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막 불편해요, 살아있는 게." 포로가 되면 역적이나 다름없다고, 나라를 배반한 것이나 같다고. 다른 사람은 포로가 되지 않겠다고 다 자폭했는데, 나는 자폭을 못 했다고. 그에게 있어 '살아 있음'이란 설명되어야만 하는 '죄'가 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그의 생존은 축하가 아닌 의심으로 점철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추방의 근거가 되는 비극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그들의 현실이다.
디아스포라는 흔히 망명과 난민, 이민이라는 범주 속에 묶이지만, 포로의 디아스포라는 더 잔혹한 형태를 가진다. 난민에게는 도망칠 선택이, 이주자에게는 떠날 이유와 도착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포로에게는 선택 이전에 '결과'가 먼저 당도한다. 전쟁터에서 수용소로, 군인에서 구금자로. 이들의 '이동'이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자들의 협상의 대상이자 결론이다.
살아남은 몸과 뒤늦게 갖게 된 목소리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혼란 속에서 철저히 대상화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만 한다. 포로의 미래는 누구의 언어로 결정되는가. 왜, 그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언어로 미래가 규정되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사실의 기록,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포로의 삶을 다루는 문장은 대개 르포의 일종으로써 '사실'의 형식을 띠지만, 사실만으로는 그들 존재의 디테일을 포착하는 것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학이 역사보다 더 풍부한 진실을 포착해 내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그들을 단지 '사실'로써 바라보는 건조한 태도를 넘어 그들의 생과 '진실'을 건져내는 눈이 필요하다.
리씨가 말한 '살아있는 게 불편하다'는 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상의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다. 역사가 메우지 못한 빈자리에 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새겨 넣을 언어가 필요하다. 이것은 전쟁이 만들어낸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정치의 소음'이 아니라 '생명의 언어'로 건너오게 하는 일이다.
ps. 이제 우리에게는 어떻게 이 목소리들을 공적 대화의 장으로 옮겨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보다 더 풍부한 진실을 견인하기 위한 고민들. 분단과 전쟁의 상징인 DMZ에서 펼쳐지는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이 바로 그러한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는 3월 27일부터 나흘간 펼쳐지는 이 자리에서,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가 정치적 소음으로 소진되지 않고 생명의 언어로 서로에게 도착하는 길이 문학을 통해 열어주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