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눈 내린 유기농 발아현미 품종 연구 들녘과 쌀을 알리는 공간 '씨앗의 마음'1월 눈 내린 섬진강가 곡성 미실란 들녘 풍경 ⓒ 이동현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오니,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공기 속에 농부만이 느낄 수 있는 봄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침 들녘에는 서리가 내려앉지만 햇살은 분명 겨울과 다릅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된다는 절기 이름처럼, 얼어 있던 것들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는 2월, 오늘도 조용히 논국을 걸으며 들녘 한 곳 그루터기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10월에 수확하고 남은 벼 그루터기가 11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을 거쳐, 1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12월 대설과 가장 춥다는 1월 소한과 대한을 지나 묵묵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음을 압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땅은 이미 물기를 품고, 다시 초록을 밀어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는 그 힘을 믿고 한 해 농사의 계획을 가만히 그려봅니다.

▲서리 앉은 벼 그루터기(포기)서리가 내려 앉은 2월 벼 그루터기 ⓒ 이동현
설명절 연휴 잠시 대구와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중 관광지와 도로에 자동차가 쉼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설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가족을 찾고 함께 하는 것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난 나에겐 설은 늘 그리운 고향의 냄새로 먼저 다가옵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미루나무, 아주 가끔이지만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이던 눈,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멀리 도시로 돈 벌러 간 누님들을 기다리던 어린 시골소년의 모습, 선후배 동무들과 썰매 타기와 팽치 놀이 하던 동네 놀이터의 모습, 이른 아침 엄마가 장만해 주신 새 옷 차려 입고 일찍부터 일가 친척집 새배하던 모습, 일가친척 모여 성묘하던 모습, 명절이 가까워지면 그리운 얼굴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지금은 많이 변해버린 고향 풍경이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네요. 그리움이 따뜻한 추억으로 피어오르는 명절, 예전처럼 고향에 북적북적하게 모이지는 못하지만 모두 한해 건강하고 무탈하게 각자의 삶속에서 살아가길 기도해 봅니다.

▲성묘하러 모인 일가친척설명절 성묘하러 온 일가친척들 모습 ⓒ 이동현
설 명절을 앞두고 의미 있는 약속을 실천하고자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짝꿍, 두 아들과 함께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님을 만나 미실란 20주년을 기념하는 마음을 담운 기부금을 전달했습니다.
200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새만금 개발에 의문을 품고, 그 안에 살아가던 물새와 저서생물, 그리고 그 바다 공간에서 생업을 하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기록했던 그 시절의 뜨거운 치열함이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아쉽게도 새만금 개발을 막진 못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라져가는 것들 곁에서 기록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요.

▲귀국 후 참여했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 모습, 당시 이렇게 많은 부분 갯벌이 보존.귀국 후 아이들과 함께 매월 새만금이 개발되는 것을 반대하며, 갯벌 생태와 어촌의 문화을 기록하러 다녔다. 저 갯벌이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찾았던 새만금 수라갯벌을 이제 장성한 청년이 된 두 아들과 함께 찾아 오 단장님을 만나 이야기 나누며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분들이 지치지 않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뜨겁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에게 작은 기부를 한 후 아이들과새만금 개발을 반대하며 생태를 기록하던 시절, 유치원생이 던 두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남은 수라갯벌 현장을 찾았다. ⓒ 이동현
새만금에 다녀온 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밥 한그릇 내어 놓는 마음을 실천하자는 미실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담양에 있는 '예수 마음의 집'에 쌀과 미숫가루 등을 전달해드리고 왔습니다. 마침 성당에서 기도 중이서던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을 그곳에서 만날 뵐 수 있었는데, 대주교님의 따뜻한 덕담과 축복, 그리고 강복을 받으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단지 '좋은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을 지지하는 일이라는 것을, 노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존엄한 한 사람이라는 말씀에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국가의 지원 없이 25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 공간을 '누군가를 돌보는 시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시간을 사람답게 지켜주는 집'으로 남고자 한다며 말씀해주신 원장 수녀님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담양 예수마음이 집' 유기농 발아현미 쌀 기부 후 최창무 대주교님과 미실란 직원들 사진한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양로원인 '담양 예수마음의 집'에 18년째 미실란 발아현미와 미숫가루 등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마침 전 광주대교구 교구장이셨던 최창무 대주교님을 뵙고 좋은 말씀 들은 후 기념사진 한장 남겼습니다. ⓒ 이동현

▲매년 명절 무렵 유기농 쌀을 기부하는 미실란매년 미실란 직원들과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양로원인 '담양예수마음의집'에 유기농 발아현미, 쌀, 미숫가루 등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 이동현
건강한 나눔 덕분에 든든해진 마음 안고 미실란과 20년을 함께해 온 친환경 유기농 벼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께 보급할 종자를 고르기 위해 작년에 수확한 품종을 보관하고 있는 저온창고에 아들과 함께 마주 앉았습니다.
작은 종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빛깔과 단단한 볍씨 상태를 살펴봅니다. 이 조그마한 씨앗 안에 한 해 농사의 시간과 땀, 그리고 누군가의 정직한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에 종자를 선별하는 시간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식량주권을 지켜가고자 한 미실란의 초심을 다잡는 일이기도 하지요.
눈이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이 흘러 모여 강물과 만나듯, 씨앗은 때를 기다렸다가 반드시 깨어난다는 진리를 믿으며, 20년을 농촌현장에서 친환경 생태농업과 유기농업을 실천해 온 저도 올 한해 멈추지 않고 미실란다운 속도로 들녘을 돌보고, 마을을 돌보고, 지구를 돌보는 일을 올해도 묵묵히 이어가겠다고 다짐해봅니다.

▲26년 유기농 발아현미 전용 품종 보급을 준비하는 농부인 아버지와 아들매년 이맘때면 그해 지을 유기농 벼 품종을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볍씨 종자를 준비합니다. 올해도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아들과 함께 종자 상태를 살피고 나눌 종자 무게를 잽니다. ⓒ 이동현

▲들녘을 살피는 시민기자와 얼떨결에 가족이 된 유기견 황구밀 씨앗을 뿌린 들녘에서 밀 뿌리 상태를 살피고 있는 시민기자와 2년전 조용히 들어온 유기견 친구 황구의 모습입니다. ⓒ 이동현
우리 전통의 설날을 맞고 보내며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건강과 행이 함께 하시길 바라봅니다. 섬진강가 곡성 옛 초등학교 공간 '미실란 씨앗의 마음'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페이스북과 블러그, 생태책방들녘의마음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