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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며느리 시점에서 보는 명절 풍경은 어떤가? 이미 명절 몇 주 전부터 찾아오는 부담과 책임감, 그 경계 어디쯤에서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외며느리인 나는 지난 2014년 결혼 후 3년 차까지 명절 하루 전날 시댁에 가 음식을 했다. 우리 시댁은 시어머님이 안 계셔서 명절에는 내가 차린 음식으로 모든 가족이 명절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반조리 식품을 사다가 구워 보기도 하고, 유명한 전 파는 가게에서 사다가 데워서 내보곤 했는데 절대미각에 가까운 시아버님의 입맛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이유로 혼자 적적하실 아버님을 생각하면 며느리로 해야 할 도리를 넘치게 하고 싶었다. 지병으로 어머님이 떠난 빈자리를 내가 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가족들이 모이면 따뜻한 온기가 도는 그런 명절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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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꿈은 설날 세 번을 지나고 무너졌다. 결혼 후 3년 만인 2017년, 사고로 중증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였을까? 시댁에 가면 아버님은 설거지도 못 하게 하셨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가족들이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냥 앉아 있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말이 내 역할의 끝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날들을 보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아니, 생각해 봐. 아버님 입장에서도 앞을 못 보는 며느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뭔가 한다고 애쓰는 모습,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

그때부터 작전을 바꿨다. 익숙한 내 주방에서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국을 한 통 끓이고 잘 드시는 반찬을 만들어 간다. 시댁에서는 아침에 준비해 간 음식을 데워서 상을 차렸다. 제법 그럴 듯했다.

명절 음식 설날에 먹은 음식들
명절 음식설날에 먹은 음식들 ⓒ 이희진

그때부터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 시댁에 가서는 상차림이나 설거지는 남편의 몫으로 정했다. 그렇다고 놀지만은 않는다. 나는 기어이 내가 잘하는 걸 찾아냈다. 묵뚝뚝한 아들이 아버지와 그리 긴 대화를 할 리 없었다. 남편이 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아버님과 그간 못 나눈 이야기꽃을 피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역할을 찾은 셈이다.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일만큼은 내가 자신 있었다. 대화 주제 선정은 물론, 리액션과 표정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물론 말로만 때워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용돈을 건네며 설날의 마무리가 완성된다. 작은 마음이지만 우리가 드리는 용돈으로 흐뭇해하시는 아버님을 뵙고 돌아오면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불가항력이라는 생의 불청객으로 나의 장애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만 나와 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한 길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위해서 인생에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버림의 법칙이 있는 듯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아니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무리되는 의욕은 살짝 내려놓고 마주하는 빈틈을 받아들일 줄도 아는 게 삶의 지혜라는 걸 살아가면서 배운다. 그 속에서도 나의 역할을 찾고, 완벽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미련은 버릴 줄도 아는 것. 여러 해 반복되는 명절을 지나면서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형태나 방법은 달라져도 진심이 흘러가는 방향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 안에서, 할 수 없는 일에는 마음을 얹지 않기로 했다. 이번 설도 내가 할 수 있는 모양과 방법으로 채워 가고 있다. 비단 명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이런 삶의 방식이 드러나곤 한다.

백번 생각해도 나는 백점은 될 수 없는 며느리다. 다만 썰렁한 시댁 공기를 백도 근처로 끓어 올리고, 아들과 아버지의 어색한 간격을 백 보 앞으로 끌어당기는 것. 분명 나는 그것에는 소질이 있는 듯하다. 나만의 유니크한 설 명절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설날#유니크한방법#선택과집중#백점짜리#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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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주부이자 선생님, 글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가장 찬란한 빛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생의 주인공. 다정한 이웃들과 동행하는 반딧불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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