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벼라별 것들은 정말 별이 되었다
- 고명자
집시들의 치마폭에는 유령이 숨어 산다지
묘지에서 밥 먹고 집시를 낳고
빈 병을 주워 들이고 내다 팔면서
깨진 화분만 보면 꽃을 심는다 그랬다는데
검은 창문 안쪽의 검은 실루엣
무서웠겠다, 밤하늘 별자리로 옮겨 앉았대도
집을 버리고 싶어 집 같은 건 영원히 갖고 싶지 않아
딱 한 철만 잡풀로 살다 가겠다 노래 불렀는데
저기, 조명이 깨진 오페라 한 대목
벼라별 노래 벼라별 소문 벼라별 것들은 정말 별이 되었다
겨울 골목에는 그래도 사람밖에 필 것 없다는데
제 노래를 거두어 무리들 떠나 버렸다
쓰러진 자전거
꼭 취한 사람 같다
철거, 철거, 공가, 공가
붉은 획, 획들
붉은 엑스, 엑스 마크들
바람에 휘날리는 팔다리들 같다
걷어 들이지 않은 늙은이의 넋두리 같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애인이 나온다는데
놀란 달빛만 털썩털썩 주저앉는다
집, 집들이 사람처럼 운다
출처_시집 <나무 되기 연습>, 걷는사람, 2023
시인_고명자: 2005년 <시와 정신>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술병들의 묘지> <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라> <나무 되기 연습>이 있다.

▲사라진 자리마다 벼라별 것들은 별로 남았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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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요람이란 말, 집은 무덤이란 말, 알 거 같아요. 알 거 같은 벼라별 것들이 조금씩 생겨나는데 그 조금을 뺀 나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벼라별 것들 천지입니다. 묘지에서 태어나고 묘지에서 밥 먹고 묘지에서 사랑하다가 허물처럼 묘지만 남겨둔 채 사람들도 유령들도 집시가 되어 별자리로 옮겨 앉습니다. 붉은 획들을 가슴에 새기고 빈 묘지로 남은 공가(空家)들, 골목들은 또 얼마나 무서울까요? 몸서리칠까요? 놀란 달빛들도 털썩털썩 주저앉는 밤, 조용히 휘파람이라도 불어볼까요.(신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