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한 관계맺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 pixabay
"사랑에서도 시민권을 요구하는 사람"
언젠가 챗지피티가 나에 대해 한 놀라운 표현이다. 관계 속 권력, 책임, 노동의 분배를 읽는 능력이 있다면서, 이는 능력임과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라고 챗지피티답게(?) 나를 추켜세웠다.
지난해 여름부터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페미니즘과 일상 속 평등한 관계맺음'이라는 이름의 독서모임을 운영해오고 있다. 남성의 소통방식, 관계맺기 방식의 한계를 탐구하고, 이것이 어떻게 일상에서 평등한 관계맺음을 가로막는지, 특히 남성과의 친밀한 관계가 어떻게 불평등한 구조로 흘러가고 고착화되는지 등을 탐구하는 중이다.
물론 나는 예전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지만, 사회문제로서 페미니즘 이슈를 읽는 것과 나의 미시적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읽고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당된다). 챗지피티가 칭찬한(?) 후자의 감각은 반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위 독서모임을 통해 키우는 중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올 어바웃 러브> 겉표지 ⓒ 책읽는수요일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벨 훅스가 쓴 <올 어바웃 러브>를 함께 읽었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통념과 다르다. 우리는 대개 사랑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신비로운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벨 훅스는 사랑은 "무의식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실천'이 사랑의 핵심임을 분명히 짚는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때 생기는 정서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든 다른 사람을 사랑하든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정적인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실천인 것이다. 사랑을 위해 실제적인 행동을 할 때 자기 비하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따라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갈 때 얻어진다.
<올 어바웃 러브> 211쪽
사랑에 대한 모호한 정의는 단지 틀린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의 윤리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랑을 그저 알 수 없고, '저절로',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무언가로 이해하는 한 당사자들의 의식적 노력이 당위적으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친밀한 관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정도 그렇고 친밀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밀한 관계는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주고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깊은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친밀함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 행동, 실천이 관계 안에서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는 통상 여성이 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짊어지고 있으며, 남성은 이러한 실천에 무감하다(의도적일 수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중요한 건 지금 누군가가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이 편면적으로 수행하는 감정노동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감정노동, 돌봄노동이 대표적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또 다른 책인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에서는 여성의 관계에서의 '감정노동' 이야기가 나온다. 이전까지 나는 감정노동에 대해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수행하는 것, 즉 시장에서 마주하는 노동의 일종으로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개념이 일터에서 개인적 인간관계로 옮겨가면서 감정노동은 페미니즘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하여 독서모임 참가자들은 위 책을 읽고 이 지점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너도 나도 감정노동 수행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슬프게도 현실의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는 그 관계 유지를 위한 감정노동을 대체로 여성이 수행한다. 관계에서 이벤트를 만들고, 어색하거나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대화의 장을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여성이다. 남성은 대체로 관계 유지에 필요한 이와 같은 노동을 회피한다. 여성이 제공하는 이와 같은 감정노동, 기획노동, 돌봄노동에 익숙한 나머지 아예 이러한 노동이 존재하는 줄을 모르기도 한다.
아래는 위 책에 나오는 저자와 저자의 여자친구 나오미의 대화다.
나오미: "동등한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어. 항상 문제를 알아차리는 건 나거든. 남자들은 '그냥 필요하면 아무 때나 나한테 부탁해'라고 말하지만, 여자들은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매번 부탁하기 싫다고!'라고 소리치고 싶어하는 듯해. 사사건건 세세하게 신경쓰는 건 정말 정말 피곤한 일이거든."
저자: "그러니까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라고 물어보는 때 말이지?"
나오미: "바로 그거야. '도움'을 받으려고 상대에게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피곤해. 그리고 '자기 몫은 해야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 혹시나 그 말이 자기를 화나게 하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봐 적절한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도 큰 일이야. 혹시 내가 자기를 화나게 만들면 나중에 화해의 기회도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다 하는 게 쉬울 때가 있어. 그런 식으로 사이클이 반복되는 거지."
(중략)
저자: "이런 여러 문제들이 우리가 서로 다른 기준을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가 '청결'의 정의를 두고 말싸움했던 거 기억나?"
(중략)
나오미: "내가 남자들이랑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들은 항상 나쁜 짓을 하는 건 '가상의 남자들'이지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기준에 대한 자기의 지적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건 같은 정의를 가지고 있건 그게 정말 중요할까? (중략) 감정노동은 사랑에 관한 거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깜냥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감정노동은...관심을 기울여주는 거라고."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142~144쪽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갖는 불만 대부분은 이와 같은 관계 안에서의 노동 배분의 불균형과 관련돼 있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은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이와 같은 '관계의 구조'에서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상황과 타이밍'의 문제로 돌린다('지금 내가 바빠서..', '지금 내가 힘들어서..' 등등). 또한, 이것은 분명히 윤리의 문제임에도 감정의 문제로 축소하기 일쑤다. 흔히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미안하다"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관계의 비윤리에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 등장한 '맨 키핑(Mankeeping)'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여성의 편면적인 감정노동, 돌봄노동과 관련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연구에서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남자(man)'와 '돌봄·관리(keeping)'를 합한 신조어로 이성애 연인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의 감정적 요구를 채워주기 위해 수행하는 불균형한 감정노동을 의미한다.
위 연구는 여성 대부분이 남성 연인과의 관계에서 상담사, 치유자, 파티 플래너 등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도 같은 수준의 돌봄이나 지원을 받지 못해 불평등을 겪는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여성들이 비연애를 선언한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연애가 주는 위안보다 감정노동의 부담이 크니, 여성들이 연애 자체를 포기하거나 회피한다는 것이다. 2024년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싱글 여성과 남성이 연애를 원하는 비율은 각각 38%와 61%로 큰 격차를 보였다.
"남자들은 무관심으로 가장하여 애정쟁취 과정에서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나에 대한 요구사항을 만들고 활동을 계획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127쪽
보살핌과 애정은 사랑의 한 요소일 뿐 전부가 아니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겉표지 ⓒ 창비
남성은 억울하다고 할지 모른다. 누구보다 상대를 애정하고 보살피고 있는데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틀렸다고 말이다. 특히 남성은 자신들이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자신의 할 일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상대 파트너나 가족을 돌보고 보살피고 있는 것만으로 스스로 사랑을 하고(받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벨 훅스에 의하면, 보살핌이나 애정은 사랑의 한 요소일 뿐 이것만으로 곧바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벨 훅스는 사랑은 신뢰가 핵심으로, 보살핌과 존중, 서로에 대한 이해, 성실함, 타인과 협조하려는 의지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권력, 지배와 사랑은 양립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살펴보면, 우리는 보살핌을 사랑이라 부르며 실상은 상대를 지배하려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벨 훅스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오히려 그런 애정과 관심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권력 다툼'을 벌이면서도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면서 서로의 관계를 끌고 가는 것이다. 서로가 권력을 향해 가학적-피학적으로 행동하면서도 애정과 관심, 다정함, 서로에 대한 충실함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권력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올 어바웃 러브> 97쪽
교제폭력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관계에서의 불균형, 불평등에 대한 감각이 훨씬 예민해졌음을 느낀다. 보통은 관계 속에 한참 빠지고 불평등한 구조가 완전히 고착화되어 감정과 에너지가 다 소진된 뒤에야 비로소 뭔가 이상하다라고 감지하게 된다. 아니 사실 이 정도면 다행이다. 지배욕을 사랑이라 믿는 행동은 이후 폭력으로 치달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많다.
연인이나 전 연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스토킹을 당하고 살해당하는 등의 교제폭력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와 같은 강력범죄 수준의 교제폭력 행위가 어느 날 갑자기 터지는 걸까? 절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불평등한 관계 맺음 속에서 폭력의 씨앗이 뿌려지고,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상대의 시간과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내가 별다른 노력을 안 하는 데도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고 편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지금 그 관계는 상대가 관계 유지를 위한 노동을 모두 짊어지고 있고, 당신은 그 노동에 무임승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상대방이 너무 좋지만 한편으로 뭔가 힘들다는 느낌이 공존한다면, 현재 관계에서의 노동, 책임, 권력의 배분이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관계에 필요한 노동 대부분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만약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스스로를 착취적 지위에서 구출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보살핌은 사랑의 동의어가 아니다. 나의 시간과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면, 관계 안에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를 방치하면 스스로를 착취적 지위로 내모는 것이 된다.
너무 피곤하다고? 그 말인즉슨 결국 상대가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윤리다. 벨 훅스의 '사랑의 정의'에 의할 때 이러한 실천에의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관계는 그냥 유지되지 않는다.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이 새삼 피곤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의 파트너에게 감사함을 느끼길 바란다. 파트너의 감정노동과 돌봄노동 덕에 당신은 그 노력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관계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평등한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사랑에서도 시민권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 관악구의 작은서점 "밝은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