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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7 14:27최종 업데이트 26.02.17 14:28

내가 자카르타에서 전을 부치는 이유

해외살이 14년, 가만히 있으면 잊히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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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부친 전 덜 갈려 서걱거리는 녹두전과 동그랑땡
집에서 부친 전덜 갈려 서걱거리는 녹두전과 동그랑땡 ⓒ 전세정

내일은 설날이다. 일 년 내내 여름인 도시 자카르타에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전을 부쳤다. 음식을 해서 가지고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찾아뵐 조상님 산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차례상을 차릴 이유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사 먹어도 된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집 안 가득 기름 냄새를 들였다.

아마도 기억 때문일 것이다.어린 시절, 설이 되면 엄마는 늘 큰 바께쓰(양동이)를 꺼내셨다. 돼지기름이 넉넉히 섞인 앞다리살을 정육점에서 갈아오셨고, 물기를 꼭 짜낸 두부에 삶은 숙주와 당면, 그리고 '정구지'라 불리던 부추를 쫑쫑 썰어 넣어 만두소를 만드셨다. 그 속을 한 바께쓰 가득 채워놓고 나면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했다. 엄마는 갓 쪄낸 만두를 접시에 담아 이웃집으로 돌렸다. 돌아올 때면 사과나 배, 다른 먹거리들이 함께 따라왔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손이 컸다.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홍두깨를 꺼내면 나는 그저 신이 났다. 밀가루 날린다고 엄마는 잔소리를 하셨지만, 그 고소한 냄새 속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 차오르면, 우리 집도 왠지 '최진사댁' 같았다.그 시절, 내가 알던 가장 풍성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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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이날은 'Chinese New Year'라는 이름으로 공휴일이다. 아이도 학교를 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이미 지난주에 행사를 마쳤다. 사자춤이 체육관을 돌았고, 아이들은 붉은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딤섬을 직접 만들며 문화를 배우는 시간도 있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친구들한테 '새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했어."

아뿔싸. 새 복이 아니라 새해 복인데. 나는 웃으며 천천히 말해주었다. "새-해-복." 아이에게 설은 아직 혀에 완전히 붙지 않은 말이다.

나는 음력과 양력을 설명했다. 한국의 설은 달을 따라 움직이는 새해라고, 그래서 해가 두 번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자춤은 알아도 떡국은 아직 집에서만 배운다.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다. 거리의 분위기와 방송, 친척들의 연락만으로도 설은 저절로 다가왔을 테니까. 하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달력에는 다른 이름의 새해가 적히고, 아이는 학교에서 다른 전통을 배운다. 가만히 있으면 잊히는 건 시간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손을 쓴다. 완벽한 상차림은 아니어도 좋다. 전을 부치고, 떡국을 끓인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집 안 공기를 바꾸고 싶어서다. 내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온기가 가득한 분위기를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다.

"엄마, 오늘 왜 이걸 해?"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설날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니까. 달력에는 다른 이름의 새해가 적혀 있어도, 우리 집 부엌에서는 여전히 설날이다.






#자카르타#해외살이#설날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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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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