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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6 17:45최종 업데이트 26.02.16 17:45

이북 실향민 형제의 설날 맞절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실향민 자식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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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세배 맞절을 하고 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세배 맞절을 하고 있다. ⓒ 이혁진

16일 오전 설날을 하루 앞두고 작은 아버지(94)가 형님(97)에게 세배를 하려고 집에 오셨다. 보통 매년 설날에 오시는데 작은 어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시면서 내일은 자녀들과 성묘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버지가 오신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아침밥도 뜨는 둥 마는 둥 안절부절못했다. 급기야 바깥에 작은 아버지가 오시는 기척이 있자 버선발로 나가 마중할 기세다. 작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 갑자기 훈기가 감돈다. 아버지가 이러한 분위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 같다.

형제는 만나자 말없이 손부터 잡았다. 서로 보청기를 끼어 원활한 대화는 힘들다. 휴대폰도 문자로만 사용한다. 작은 아버지는 인공와우까지 한 상태, 나는 두 분의 대화를 돕기 위해 필담노트까지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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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 분은 맞절로 세배부터 시작했다. 형제 맞절은 실향민 가족인 우리 집의 오랜 풍습이다. 형제의 진짜 세배는 '이북 고향 개풍군'의 부모님께 드려야 하지만 할 수 없어 이를 맞절이 대신하고 있다.

아버지는 지난해와 달리 의자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작은 아버지의 세배를 받았다. 작은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배려해 의자에 앉도록 했다. 이어 내 세배를 받으신 작은 아버지는 "살다 보니 조상들이 못다 한 삶까지 오래 사는 것 같다. 이렇게 함께 하니 고맙다"며 덕담을 건넸다.

 작은 아버지가 세배를 한 후 형님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작은 아버지가 세배를 한 후 형님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 이혁진

사촌동생과 나도 어른들 따라 맞절을 하며 건강을 기원했다. 아버지는 "예부터 형제간 맞절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이다"라고 누차 강조했다. 혼자되신 작은 아버지는 인근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병든 작은 어머니를 오랫동안 수발하면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도 그때가 그립다고 회고했다. 아버지와 나는 작은 어머니 때문에 고생하는 작은 아버지를 위로한다고 가끔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때마다 불쌍한 동생을 위하는 아버지의 깊은 연민은 기억에 새롭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두 형제의 정은 유별나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정겹고 든든하다. 아버지 형제는 6.25 전쟁으로 이북 고향을 떠나 온 실향민이다. 이후 아무도 없는 이남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았다. 뜨거운 형제애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산가족 형제의 삶은 내 인생의 표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좌절할 때마다 역경을 견디고 희망과 낙관적인 용기를 갖도록 늘 가까이서 힘을 주었다. 두 분은 특히 설날 등 명절이 되면 이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설움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두 분의 소원은 고향을 방문하거나 통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는 자식인 내게로 이어졌지만 희망 고문이 되다시피한 통일과 귀향보다는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으로 소원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에 이어 왕년의 6.25 참전용사로서 세상을 호령하던 두 분은 이제는 자식들의 도움이 아니면 거동이 쉽지 않다.

설날엔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와 임진각에 다녀올 계획이다. 부디 두 어른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통일되는 그날을 넘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고 싶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실향민#아버지#작은아버지#맞절#625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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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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