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열린 한국학습장애학회 2026 동계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특별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이 늘고 있지만, 현행 특수교육 진단·평가 체계는 이들의 교육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학습장애학회(학회장 나경은)와 서울대학교 BK21 혁신과공존의교육연구사업단은 지난 7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학습장애 진단·평가 체계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동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학계와 보호자, 교육·의료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학습장애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현황을 점검하고 진단·평가 체계의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현재 경계선지능이나 난독 등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지원은 주로 기초학력보장 체계에서 이뤄진다.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을 '학습지원대상학생'으로 선정해 지원하며, 난독이나 경계선급 지적 기능 등 특수한 요인을 지닌 학생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학습장애를 내적 요인으로 인해 학업성취에 현저한 어려움이 있는 경우로 규정해 특수교육 대상에 포함한다. 이처럼 제도가 나뉘어 운영되면서, 학습의 어려움이 연속선상에 있음에도 학생이 어느 체계에 속하느냐에 따라 지원 방식과 강도가 달라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특수교육대상자 기준 불명확... "점수 너머의 교육적 필요를 파악해야"

▲김기룡 중부대학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김기룡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는 학습장애를 포함한 특수교육대상자 선정·배치 과정의 운영 실태를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은 특수교육법에 따른 11개 유형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법령은 장애 진단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학습에 현저한 어려움이 있어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진단·평가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수교육대상자 신청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지만, 모든 신청 학생이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발표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기각률은 2023년 3.95%에서 2024년 6.18%로 1년 사이 약 1.5배 증가했다. 지역 간 격차도 컸다. 2024년 부산의 기각률은 26.67%에 달한 반면, 대전은 0.23%에 그쳤다. 김 교수는 과밀학급 등 배치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이 기각되는 사례도 있었다며, "선정 절차에서 배치 여건을 고려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경계선지능 학생의 경우 지능지수와 적응행동검사 결과 간 불일치, 일반교육 환경에서의 성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기각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수치화된 의료적 진단에만 기대기보다 점수 너머의 교육적 필요를 발견할 수 있는 종합적 진단 모델이 필요하다"며 "정량적 결과와 함께 행동관찰, 학교 수행, 면담 등 맥락적 자료를 종합해 학생의 교육적 요구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특수교육법에는 '특별한 교육적 요구'를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이 충분히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도 언급됐다. 특히 학습장애와 정서·행동장애는 진단 기준의 해석 범위가 넓어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특수교육대상자를 규정하는 세부 지침이 명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 간 격차와 자의적 판단을 줄일 수 있는 표준화된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특수교육대상에서 기각된 학생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각으로 절차를 끝낼 것이 아니라 일반학급 내 다중지원팀과 연계하거나 재신청 시점을 안내하는 등 미선정 학생에게도 체계적인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봉철 양평교육지원청 교사가 발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경기 양평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12년간 특수교육대상자 진단·평가와 선정·배치를 담당해 온 전봉철 교사도 현장의 한계를 짚었다. 2025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 학생 중 학습장애 유형은 전체의 0.9%에 불과하다. 전 교사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적지 않은데, 학습장애 유형은 통계에서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는 학습장애의 출현율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진단·평가 체계가 해당 특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지원청별로 절차와 기준, 담당자의 전문성에 차이가 존재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아울러 "진단·평가는 학생의 교육적 요구를 파악하는 과정이어야 함에도 대상 여부를 가르는 형식적 절차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며 담당 교사의 전문성 강화와 함께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진단·평가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습장애, 조기개입과 특교자 선정 사이의 딜레마

▲이은주 씨가 난독증 자녀의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기각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난독 학생의 보호자 이은주 씨는 학습장애 특수교육대상 선정 절차에서 최종 기각된 사례를 공유했다. 이 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난독 진단을 받았고, 이후 골든타임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언어치료와 가정 내 중재를 병행했다. 6학년 때 실시한 검사 결과, 읽기 정확성은 향상됐지만 작업기억과 읽기 유창성 등에서는 여전히 낮은 수행을 보였다.
이 씨는 관련 검사 결과와 진단 자료를 제출해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했으나, 교육청은 '읽기 속도와 처리 효율의 부담이 있을 뿐 난독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재심 끝에 최종 기각 통지를 받았다.
그는 "정량적 기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영역 간 격차나 과거 진단 이력, 일반교육 환경에서의 어려움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조기 중재를 통해 일정 부분 향상이 이뤄졌지만, 이후에도 남아 있는 교육적 요구가 선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앞으로 점점 난독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이 많아져도 대다수는 특수교육대상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조기 중재를 통해 개선이 이뤄졌어도, 과거 이력을 참고해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보호받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석 한국난독증협회 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이어 한국난독증협회 회장이자 서울아이정신의학과의원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정재석 회장은 난독증의 의학적 평가 체계를 설명하며,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기준의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난독증이 경계선지능, 난산증, ADHD 등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경계선지능인의 70%는 난독 특성을 함께 보인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교육청에서 경계선지능 진단을 받으면 난독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조는 조기 진단과 개입을 막는 요인"이라며, 단기간 지원에 그치지 않고 동반한 증상도 포괄할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인이 돼도 이어지는 '제도 밖' 현실

▲송연숙 (사)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송연숙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학습장애 진단·평가 체계의 실효성 제고와 느린학습자의 교육권 보장'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사례를 토대로, 제도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장벽을 마주한 성인기 경계선지능인의 현실을 전했다.
송 이사장은 "경계선지능 학생은 특수교육대상자에서 기각되고 바우처 등 단편적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부모가 큰돈을 들여 사설센터 중재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교육청에서의 지원도 기초학력 중심의 한시적 개입에 머물러, 지속적인 학습권 보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난독, 난산, 경계선지능 등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실패를 반복한 뒤에야 지원을 받는 집단"이라며 "학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촘촘한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문성을 갖춘 진단·평가 전담팀을 두고, 정치 상황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일관된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합토론에서는 경계선지능과 난독 자녀를 둔 보호자들이 특수교육대상자 기각·선정 경험을 공유하며, 특별한 교육적 요구를 가진 학생이 특수교육·기초학력 지원·일반교육 체계를 넘나들며 끊김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나경은 한국학습장애학회장은 "오늘 학술대회에서 학습장애 진단·평가 체계의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학계와 부모, 당사자, 의료계 등 다양한 주체가 한자리에 모였다"며 "이 자리에서 논의된 문제의식이 현장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