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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5 14:01최종 업데이트 26.03.02 20:14

형식이 줄어든 자리에 사람의 시간이 채워졌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월 14일부터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닷새라는 시간은 차례를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맞이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요즘은 명절에 예전보다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집도 많아졌고 가족 단위로 여행을 다니는 집도 많다. 명절 문화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친구의 아들이 명절을 쉬고 2월 말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이번 설은 여자친구 집으로 가고, 추석에는 우리 집으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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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아들이 한 말을 전해 듣고 놀랍기보다 자연스러운 변화로 느껴졌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가 오히려 지혜로워 보였다.

지난 13일, 맏며느리인 내가 시가 식구들 단체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곧 설이 다가오네요. 이번 설날에는 뭐 맛있는 걸 준비해 오시는지, 전 뭘 준비하면 좋을까 싶어 연락드립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아도 명절과 제사를 꼬박꼬박 챙기며 맏며느리로서 역할을 하며 지내왔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대구에 크게 퍼졌을 때 도시는 비상사태에 들어간 듯했다. 일상은 멈춰 선 것 같았다. 확진자가 하루 수백 명씩 늘었다. 시민들에게는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이 강하게 권고되었고, 병원과 선별진료소는 연일 붐볐다. 공공시설과 학교는 임시 폐쇄되었고 정부는 대구를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해, 부산에 사는 시동생네 가족은 명절과 제사에 오지 못하였다. 그 무렵부터 집집마다 명절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현대적 차례상 간소화' 안내를 발표했다. 우리 집도 가족들과 상의 후 명절은 간소하게 차례상만 올리기로 했다. 설에는 떡국과 과일을 올리고 추석에는 성묘로 대신하기로 했다.

내가 결혼한 새댁이었던 1990년대에는 명절이 되기 이틀 전부터 부산에 있는 시가에 내려갔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라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선 끝도 없는 줄을 몇 시간씩 서서 겨우 표를 끊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직장 일이 바빠 내가 아들만 데리고 먼저 시가에 내려갔던 적이 많았다. 맏이라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친정에 갈 수 있었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게 도리라 생각하고 어머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두 시동생과 함께 홀로 사셨던 시어머님을 위해 남들보다 일찍 내려가서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때는 연탄을 때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궁이에 솥을 걸고 물을 데워 부엌살림을 했다. 전은 방에 들어가 부칠 수 있었지만, 튀김이나 다른 요리는 부엌에서 해야 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들의 한 마디가 있다. 아들이 예닐곱 살 무렵,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할머니 집에만 오면 왜 온종일 부엌에만 있어?"

그때의 아들에게는 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심심했을 수도 있고, 일만 하는 나를 걱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먼저 작은 시동생이 단체방에 답을 해 왔다.

"저희는 양념 소갈비를 준비해 가겠습니다."

나는 떡국과 문어삼합 그리고 과일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아래 동서가 질문을 남겼다.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실까요?"

둘째 시동생은 부산 다대포에 살고 있다. 가까이 바다가 있어 회를 사 오면 좋겠다는 답을 남겼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지난 추석에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 예약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갔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헤어지니 서로에게 부담이 덜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설에는 같이 세배도 나누고 차례도 지내야 하니 가족들이 다 모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님께서 살아계실 때 며느리 세 명은 한복을 꼭 입었다. 어른께 세배를 드려야 하니 며느리의 의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원하시던 일이었다. 그리고 형제들끼리도 둥그렇게 모여 서로에게 절을 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어머님이 만드신 우리 집만의 작은 행사였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지금, 단출한 차례상을 차리기 시작한 설날은 떡국과 과일 몇 가지뿐이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부엌에 서 있는 시간보다 가족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예전에는 명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고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몸살이 먼저 왔다. 명절 문화를 바꾸고 나니 웃음이 먼저 남았다. 차례는 줄었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형식이 줄어든 자리에 사람의 시간이 채워졌다. 몸은 가볍고 마음은 따뜻한 설이 되길 바란다. 형식보다 사람이 남는 설이기를. 누구에게나.

간소화한 차례상 지난해 설날에 찍은 차례상
간소화한 차례상지난해 설날에 찍은 차례상 ⓒ 황윤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명절#설날#문화#가족#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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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 재학 중, 브런치 스토리 작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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