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시애틀에서 페리로 30분 정도 떨어진 퓨젯 사운드 한가운데 있는 베인브리지섬(Bainbridge Island)에 위치한 블로델 보호구역(Bloedel Reserve). 벌목지에서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 이안수
지난달 중순, 미국 워싱턴주 수콰미시(Suquamish) 마을의 시애틀 추장 묘지를 방문했다가 원주민 부족의 땅 위에 그들의 전통과 자연 보존 정신에 대한 존중을 담아 조성된 특별한 정원을 방문했다. 삼림정원인 블로델 보호구역(Bloedel Reserve)이다. 수콰미시 메모리얼 묘지에 위치한 시애틀 추장 묘지에서 불과 3km 남쪽, 베인브리지섬으로 건너 5분 남짓 달리면 닿는 곳이다.
이 보호구역은 자연 자체가 원시림으로 보존된 곳이 아니라 산업적 용도로 나무가 베어진 황폐화된 벌목지였다. 1950년대 목재 재벌이었던 프렌티스와 버지니아 블로델(Prentice & Virginia Bloedel) 부부가 이 벌목지 땅을 구입했다.
블로델은 목재 사업가였지만 산림보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으로 벌목 폐지를 매입해 재조림하는 환경주의자였다. 1930년대 후반, 그는 산림 보존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그의 회사가 태평양 북서부 지역의 민간 주도 재조림 사업의 70%를 수행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이미 '블로델'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캐나다 밴쿠버의 퀸 엘리자베스 파크(Queen Elizabeth Park) 정상에 자리한 돔형 온실, '블로델 컨서버토리(Bloedel Conservatory)'의 이름으로 이미 만났던 터였다. 도심에서 열대·아열대·사막 식물과 희귀 조류를 만날 수 있는 이 특별한 공간은 그의 가족 재단인 블로델 재단의 기부로 완성된 곳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공간
140에이커 규모의 블로델 보호구역은 블로델 부부에 의해 숲, 초원, 수변 공간을 포함하는 환경이 복원되었다. 두려운 자연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교감이 필요할 때 안기고 싶은 어머니 같은 모습의 조경이 진행되었다.

▲프렌티스 블로델은 1900년 시애틀 목재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일대학교를 졸업후 교사가 되려했던 꿈을 사업에 합류하길 원한 아버지의 강권으로 접었다. 회사는 그가 합류한 후 세계 최대 규모이 벌목회사로 성장했다. 그가 남달랐던 것은 벌목후에 재조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이었다. 그의 성취를 공공을 위해 희사함으로서 삶의 끝에서는 어떤 마무리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확실한 좌표를 남겼다. ⓒ 이안수
1951년 블로델 보호구역 부지를 구입한 부부는 1980년대 초반까지, 약 30년 이상 그곳을 가족 주거지로 삼아 자연과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정원을 조성하고 유지했다. 특히 아시아 철학에 영감을 받은 부부는 조경가들과 협업을 통해 키 큰 솔송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난 고요한 숲길, 이끼 정원, 일본 정원, 성찰의 연못 등을 조성해 식물과 돌과 물 사이를 느리게 걷는 것만으로 내면을 향하게 되는 명상 공간이 되도록 했다.
습지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는 민감한 습지지역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손으로 운반 가능한 도구로만 사용해 설치되었다.
부부는 이 보호구역의 조성이 끝난 1970년에 자신들의 집과 토지를 워싱턴 대학교에 기부했다. 그러나 대학이 관리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자 독립 비영리 재단, 수목기금을 만들어 관리와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공공 유산으로 만들었다. 이 보호구역은 1988년부터 대중에게 개방되고 있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보호구역의 들머리에 프렌티스와 버지니아 블로델 부부가 왜 그렇게 벌목지 복원에 열정적이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작은 석판에 새겨져 있었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프렌티스 블로델

▲자연속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생존에 지치거나 그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자연이라는 어머니속에서 위안받고 회복할 수 있다. 점점 거대해지는 인간의 파괴력을 어머니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용되는 어리석음은 언제나 지적되어왔지만 탐욕이 그 어리석음을 가리곤 했다. 블로델 보호구역(Bloedel Reserve)이 그것을 일깨운다. ⓒ 이안수
여러 갈래의 트레일 중 하나를 택해 걸을 때 숲에서 나온 사슴이 포슬포슬한 초지를 걸어 우리 곁을 지났다. 이 삼림정원은 다시 원시림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땅에 벌목으로부터 살아남았던 나무들을 비켜 초원을 조성함으로써 서양식 풍경화적 배치에 돌과 연못을 들여 동양의 선(禅)적 정화를 도모했다.
일본 정원을 돌아 마침내 도달한 곳은 블로델 부부의 거처였던 장원 저택(Manor House)이었다. 18세기 프랑스풍으로 설계된 저택에 발을 들이자 마치 초대된 손님을 맞듯 자원봉사자께서 반겨주었다. 공개된 1층은 응접실과 식당, 도서관이 원래의 용도 대로였다.
완만한 언덕 위의 저택은 퓨젯 사운드와 캐스케이드 산맥으로 시야를 터주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전 세계 자산이 약 30억 달러에 달했던 그가 이 벌목지 땅을 구입한 후 회사 업무에서 거의 손을 떼고 매일 이 땅을 걸으며 어떤 형태로 자연과 교감 가능한 곳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골몰했던 집이다.

▲블로델 부부의 거처였던 장원 저택 서재의 책상 뒷면에 큰 숲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환경주의자의 열정을 상징하는 사진이었다. 저명한 한국계 미국 사진가, 남궁요설(Johsel Namkung) 사진가의 작품이었다. ⓒ 이안수
자연에 기대고 자연 자원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벌목만이 아니라 벌목 후의 상태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던 산림사업가. 성공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하고 떠난 그의 철저함을 통해 유한한 기간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어떤 태도의 삶을 살 수 있을 지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방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