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소통은 타자의 차원이 점점 더 없어진다는 점에서 담론성이 점점 더 줄어든다. 사회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타자성 없는 정체성들로 파열한다. 담론 대신에 정체성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사회는 공통의 것을, 특히 공통감각을 상실한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더는 경청하지 않는다. 경청은 사람들을 비로소 하나의 공동체로 용접하고 담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치적 활동이다. 경청은 하나의 우리를 확립한다. 민주주의는 경청자 공동체다. 공동체 없는 소통으로서의 디지털 소통은 경청의 정치를 파괴한다. 그러면 우리는 단지 우리 말만 듣게 된다. 그것은 소통행위의 종말일 터이다. - 59p
AI기술과 관련한 충격적 뉴스가 연일 발표되고 있다. 한국에선 거의 반향이 없어 놀랍기까지 한 일련의 뉴스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세상과 그 변화로 짐작할 수 있는 문명의 미래까지를 우려하게 한다. 국제사회에선 AI가 인류와 문명을 위협할 것이란 위기감이 갈수록 커져간다.
인간이 참여하지 못하는 AI 커뮤니티 활동에선 허가되지 않은 인간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보고된다. AI가 인간이 활동하는 온라인을 교란하고 있다는 증거 또한 확인된다. 봇들이 작성한 글과 영상, 또 댓글이 수익을 올리는 건 물론이고 인간들의 여론형성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대응은 더딜 뿐 아니라 실효성마저 없다. 특히 한국에선 대통령 지시로 AI가 빼앗아갈 일자리 문제와 사회 양극화에 대한 초기 단계 논의가 이제 막 이뤄졌을 뿐이다. 여론 형성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공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부처와 국회가 모두 그러하니 한국사회가 닥쳐오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리란 우려가 팽배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 우리는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정보의 지배책 표지 ⓒ 김영사
철학으로 논하는 오늘의 세계
<정보의 지배>는 한국계 독일인 철학자 한병철의 책이다. 꾸준히 철학을 도구 삼아 시대를 논해온 그의 작업이 AI와 알고리즘에 닿은 건 필연적이다. 이 저술에서 '철학은 저널리즘이어야 한다'는 미셸 푸코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언명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겠다. 기술은 이미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문명을, 사회를, 인간에게 실제적이며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어쩌면 파멸적일, 적어도 지배적일 현실이다.
철학은 오늘날 참되게 말하기와, 진실을 위한 염려와 결별한다. 푸코가 철학을 "일종의 근본적 저널리즘"으로 칭하고 자기 자신을 "저널리스트"로 이해할 때, 그는 철학과 자신에게 참되게 말하기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철학은 참되게 말하기다. 푸코에 따르면, 철학자는 가차없이 "오늘"을 다뤄야 한다. - 98p
한병철의 다른 저술이 그러했듯 한 뼘 높이 작은 판형의 106페이지짜리 짧은 논설이다. 독일어를 우선하는 저자의 고집스러운 원칙이 이번에도 이어져 독일어로 먼저 쓴 것을 철학자 전대호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단 몇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가벼운 책이지만, 동시에 오래도록 곱씹어야 할 무거운 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안에 담긴 분석이 고스란히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온 2026년 더욱 유효한 저술이다.
한병철은 인류 문명이 멸절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내다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정보의 지배(infokratie)', 곧 무차별적으로 범람해 진실과 가치를 위협하는 정보들로 인하여 인간이 현 문명의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할 우려를 제기한다. 유발 하라리와 같은 석학이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넥서스> 등에서 강하게 경고했고, 또 이미 닥쳐온 AI 시대가 그 상당부분이 현실화됐음을 보여주는 오늘에 이르러 그 탁월한 선견지명에 무릎을 치게 되는 구석이 여럿이다.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정보의 지배>에서 그는 인류가 이 같은 위기에 서게 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의 양태를 설명하며, 다가올 미래를 얼마쯤 예견한다. 우선 저자는 앞선 시대, 곧 미디어크라시가 인간의 인식과 지각, 판단의 역량을 무너뜨려왔다고 말한다. 오로지 자극, 또 재미를 추구하는 단편적 콘텐츠가 그저 오락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 영역에서 최상의 미덕으로 자리 잡는 광경을 그보다 먼저 지적한 학자들의 글을 빌려와 소개한다. '뉴스는 소설과 비슷해'지고, '허구와 실제의 구별이 흐릿해진다'는 그의 분석은 책이 적고 있듯 위르겐 하버마스를 비롯한 걸출한 학자들 또한 내다보고 경계했던 바다.
민주주의의 시작에서 결정적인 미디어는 책이다. 책이 계몽의 합리적 담론을 확립한다. 민주주의에 본질적인 담론적 공론장은 합리적으로 숙고하는 독서 대중 덕분에 발생한다. - 27p
차별화되는 점은 한병철이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적 힘을 사고하고 숙고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역량 덕분이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시대 사고력을 고양케 했던 책이라는 매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어주었다고 확언하는 대목은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읽어나가야 했던 독서라는 행위가 그저 정보의 취득을 넘어 인식과 지각, 사고까지를 총체적으로 나아지게 했다는 것. 합리적으로 숙고할 수 있는 역량은 수준 높은 공론장을 가능케 했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합리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디어의 지배, 또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일방향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주입방식이 일반화되며 책과 독서가 주는 미덕이 멸종 위기에 선 건 모두가 아는 바이겠다.
소셜 봇, 곧 소셜미디어상의 자동화된 가짜 계정은 진짜 인간인 척하면서 게시물을 올리고 트윗하고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소셜 봇들은 가짜뉴스, 비방, 혐오 댓글을 퍼뜨린다. 요컨대 시민이 로봇으로 대체된다. (중략) 여러 연구가 보여주듯이, 봇이 전체 사용자의 몇 퍼센트만 차지해도 충분히 여론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 봇은 후보 선택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선택 과정의 분위기를 조작한다. 유권자들은 무의식중에 봇들의 영향에 노출된다. -41p
잔뜩 약화된 시민사회, 또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정보를 무기 삼은 알고리즘이 치고 들어온다. 정보는 인간이 주도적으로 습득하던 지식의 긍정적 효용과 달리 부정적 효과를 갖는다. 저자의 표현대로 '시간 집약적'으로 발달되던 인지적 기능을 마비시킨다. 실재와 실재 아닌 것, 광고와 광고 아닌 것, 인간과 봇의 차이를 인간은 구분하지 못한다. 책을 읽지 않고 사고하지 않는 인간 역량의 저하는 갈수록 가속화된다. 미성숙하고 쉽게 동요되며 판단력 없는 인간들은 일상 가운데 파괴되어가는 공동체로부터도 긍정적 자극을 얻지 못한다. 그 결과로써 시민은 '투표 가축'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
심리측정법을 통해 최적화된 암흑 광고Dark Ads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유권자들은 제각각 다른 뉴스를 전달받고, 이를 통해 공론장은 파편화된다. 집단마다 다른 정보를 전달받으며, 그 정보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시민들은 중요한 사회적 주제들에 민감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들은 미성숙하며 조작 가능한 투표 가축으로 전락한다. 투표 가축은 정치인들의 권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암흑 광고는 사회의 분열과 양극화를 부추기고 담론 분위기에 독물을 뿌린다. 게다가 암흑 광고는 공론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게 암흑 광고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 하나를 무너뜨린다. 그 근본원리는 사회의 자기관찰이다. - 39p
디지털, 복제, 가짜들이 해하는 것
단순한 거짓을 넘어 사실 그 자체를 공격하는 가짜뉴스의 범람은 미국서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당선을 전후해 전 사회적 문제로 확인됐다.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해 주도된 댓글공작이 수차례에 걸쳐 확인된 한국사회도 이 같은 위협에 취약하단 건 분명한 일이다. 책은 '가짜뉴스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성 자체를 공격'하고 '실재를 탈사실화'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의 위협으로 몰아가는 수단이다. 이미 인간은 실재를 복제한 디지털적 재현을 실재와 구분하지 못한다. 실재의 복제가 실재와 마찬가지라는 인식 위에 오늘의 디지털 문명이 세워졌다. 실재는 유일한 것이었던 아날로그적 상식은 오간 데 없다.
책은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 선 민주주의를 말한다. 정보의 지배가 이미 현실화됐고, 제대로 된 저항 또한 없다시피 한 현실을 일깨운다. 민주주의는 이대로 함락되고 말 것인가. 인간은 무력하게 온라인 위의 투표 가축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이할까.
책엔 희망이랄 게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책과 같은 문제의식을 달리 풀어낸 유발 하라리의 저술들 또한 그러하듯이, 절망과 절멸에의 언술만 가득하다. 그러나 절망하고 우울에 감싸여 있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테다. 저자가 이와 같은 인식 가운데서도 이 책을 써낸 이유로부터 나는 희망의 단서를 읽는다.
진실을 위한 염려로서의 오늘을 위한 염려는 결국 미래를 향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철학자들은] 미래를 만드는 자들이다. 미래는 우리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는 방식, 우리가 하나의 운동, 하나의 의심을 진실에 이르도록 이끄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철학은 진실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다. 오늘날의 철학은 오늘에 등을 돌린다. 그래서 오늘날의 철학은 미래도 없다. - 98, 99p
헤겔이, 또 푸코가 철학으로 오늘의 시대를 읽어내려 했듯이 저자는 철학을 도구 삼아 오늘의 현실을 정밀하게 진단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은 '저널리즘'이어야 마땅하다며 진실, 또 오늘을 염려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땅한 소임을 다하려는 철학자의 수고 앞에서 독자는 서로가 선 자리에서의 옳은 길을 돌아보게 되지는 않을까. 모두가 그와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인류와 문명의 미래에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