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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위해 모인 궁평토종농부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 왼쪽부터 김명민 대표, 김춘옥 이사, 정용락 감사, 김문자 조합원, 양옥순 이사. 
인터뷰를 위해 모인 궁평토종농부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 왼쪽부터 김명민 대표, 김춘옥 이사, 정용락 감사, 김문자 조합원, 양옥순 이사.  ⓒ 화성시민신문

"사람들이 그래요. 형, 토종 농사지어서 먹고살기 힘드니까 때려치우라고. 수확량은 적고 모양은 제각각이라 돈이 안 된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투박한 씨앗 속에 우리 어머니들이 해주던 진짜 밥상, 그리고 잊혀가는 마을의 정(情)이 숨어 있으니까요."

11일,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의 한 농가. 봄기운이 찾아들기 시작한 이곳에서 조금 특별한 고집을 부리는 농부들을 만났다. 매끈하고 보기 좋은 개량종 대신, 울퉁불퉁하고 크기도 제각각인 '토종 씨앗'을 고집하는 이들이다. 지난 2025년 8월, 마을 공동체를 넘어 '궁평토종농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롭게 출범하고 오는 3월 에코팜랜드 내 '농가 레스토랑' 오픈을 앞둔 김명민(67,궁평2리) 대표와 정용락(74, 궁평2리) 감사, 김춘옥(75, 백미리) 이사, 김문자(68, 용두2리) 조합원, 양옥순(72, 궁평2리) 이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연히 맛본 '조선오이', 마을의 운명을 바꾸다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 화성시민신문

김명민 대표가 토종에 빠지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도 옛날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이 안 나더라"며 "그러다 우연히 이웃에서 가져온 오이김치를 먹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이게 바로 엄마의 맛이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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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이는 대대로 씨를 받아 심어온, 일명 '조선오이'였다. 이를 계기로 부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토종 씨앗을 찾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니 '개혓바닥 상추', '돼지파', '사과참외', '개구리참외' 등 이름도 생소한 보물 같은 씨앗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6년 마을 공동체로 시작한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농사를 넘어섰다. 농기계의 발달로 '품앗이'가 사라지고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농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그 노력은 2020년 화성시 제1호 토종마을 지정, 전국 1호 거점 집하장 유치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새벽 4시의 질주"... 낡은 탑차로 쏘아 올린 기적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 화성시민신문

토종 농부들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물류였다. 고령의 농부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농산물을 포장하고, 먼 거리의 로컬푸드 매장까지 개별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정용락 감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농가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걷고, 농협에서 폐기 직전인 중고 탑차를 600만 원대에 낙찰받아 직접 운송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칠순이 넘은 정 감사가 매일 새벽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낡은 트럭으로 매일 새벽길을 오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남편이 사고가 날까 봐 늘 불안했다. 결국 2020년 3월 경 권역별 순회인사를 하는 화성시장님께 '우리 남편이랑 오래 살고 싶다'며 간곡히 부탁드려 배송 차량 지원을 이끌어냈다"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현재는 서신면 일대 농가들의 농산물을 순회 수집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못생겨서 반품되던 오이, 없어서 못 팔아요"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 화성시민신문

토종 작물의 가장 큰 특징은 '강인한 생명력'과 '개성'이다. 정 감사는 "개량종은 농약을 다섯 번 칠 때 토종은 한 번만 쳐도 된다. 자생력이 강해 기후 위기 시대에 지구를 지키는 농사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못생겼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로컬푸드 매장에서 반품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합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매년 도시민을 초청해 '토종 김치 축제'와 시식 행사를 연 것이다. 직접 맛을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해 합류한 김문자(68) 조합원은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조선오이를 심었는데, 수확도 잘 되고 행사 때 맛을 본 분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제 토종 농산물은 매대에 올리면 금세 동이 나는 인기 품목이 됐다.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수익 70%는 이웃과 나눕니다"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 화성시민신문

이들은 지난해 8월, 마을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화성호 에코팜랜드 내에 들어설 '농가 레스토랑' 운영자로 선정되면서 더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설립 과정에서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전국 대회에서 마을을 발전시키겠다고 선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사회적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수익금의 30%는 다음 사업을 위해 적립하고, 나머지 70%는 장학금 지급이나 취약계층 지원 등 지역 사회에 의무적으로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재능 있는 지역 아이들을 돕고 소외된 이웃을 살피는 '기부왕 농부들'이 되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3월, '토종 농부 밥상'으로 초대합니다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궁평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  ⓒ 화성시민신문

조합은 오는 3월 중순, 에코팜랜드 내 농가 레스토랑 '토종 농부 밥상'의 임시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합원들이 직접 농사지은 토종 쌀과 채소로 만든 건강한 밥상을 선보인다. 또한 향후에는 정미소를 운영하는 조합원과 협력해 토종 쌀 브랜드를 출시하고, 반찬 가공 공장을 세워 로컬푸드 반찬 코너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김명민 대표는 토종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가 지키려는 건 단순히 씨앗이 아닙니다. 잊혀가는 맛, 건강한 먹거리,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입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분들은 언제든 찾아오세요.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들의 '토종' 고집이 우리네 밥상 위에서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윤미#토종농부#사회적협동조합#궁평2리#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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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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