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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응대 근로자로 10년이 넘게 일했습니다. 오랜 시간 서비스업 종사자로 근무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욕설, 폭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욕설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민원인은 신고라도 할 수 있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요. 민원인이 저의 업무 처리에 대한 거짓 민원을 회사에 제기해 제가 그것에 대해 소명해야 할 때는 2차적인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녀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불신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신 비용이 고객응대 근로자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의의 고객에게도 확인할 절차들이 많아지므로 고객의 입장에서도 시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객들이 자주 제기하는 불만 중의 하나가 "자신을 의심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는 것인데요. 선의의 고객에게는 죄송한 부분입니다. 고객이 말하는 그 '이상한 사람'을 고객응대 근로자는 자주 만나는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직장은 고객들의 유실물이 많은 곳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유실물은 더욱 많아집니다. 오늘은 휴대폰을 잃어버린 고객이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본인 확인을 한 뒤 물건을 인도하는 것이 절차인데, 본인 확인에는 협조하지 않고 대뜸 물건을 달라고 주장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객의 낯익은 얼굴을 보며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예전에도 여러번 방문하여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가방을 잃어버린 고객은 잃어버린 가방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보관하고 있는 가방을 다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고객은 가방을 계속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제지하자 고객은 몇 시간 뒤 다시 찾아와 가방을 달라고 하고, 매일 전화해서 가방을 달라고 말하는 등의 행동을 했습니다. 고객이 찾는 가방과 저희가 보관중인 가방은 색깔도 달랐고, 안에 들어있는 물건도 달랐습니다. 심지어 물건이 습득된 장소와 고객의 동선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고객을 다시 만나니 저의 불신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객의 말과 휴대폰의 특징이 조금 어긋낫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고객이 이용한 장소와 물건을 찾은 장소가 일치했고, 고객이 물건을 잃어버린 시간과 습득 시간이 일치했습니다. 다만 고객이 휴대폰 번호를 기억하지 못했고,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고객은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기억력이 좋지 않으나 그 핸드폰은 본인 것이라며 계속 물건을 달라고 했습니다. 본인 확인을 해야 했기에 핸드폰에 저장된 가족과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마음속엔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불신을 가진 채 가족이 전화를 받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아들과 통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들은 엄마와 통화하며 말했습니다.
"엄마. 제발 좀 물건 좀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잖아."
"아유. 자꾸 기억이 안 나는 걸 어떻게 해."
휴대폰은 고객의 물건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였던 것입니다. 오랜 근무로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던 저에게 오늘의 사건은 다소 반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깊은 편견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가진 '불신 비용'이 누군가의 진심에 누가 되었을지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라'는 격언을 떠올려봅니다. 실천하기 어렵지만 올바른 그 말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이번 설 명절은 더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가족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하려 합니다. 그리고 난 뒤 근무지로 복귀해 더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