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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3 15:22최종 업데이트 26.02.13 15:22

66년생 말띠 아내들 환갑 이벤트 벌인 다섯 남편

1박2일 섬여행... 혼자면 겁나서 못할 일도 '같이하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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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캐리어 금지라 했더니 너넨 가방을 세 개나 가져왔냐."
"그러게~ 싸다 보니까 이렇게 되네."

"남들이 보면 일주일 여행 가방인 줄 알겠다."
"하하하, 그런가…."

거제도로 가는 승합차 안, 지적 아닌 지적질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1966년생 말띠 아내 다섯 명, '적토마'의 예순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20대 중반 새댁 시절 같은 교회에서 만나 함께 웃고 울던 친구들이 어느덧 예순이다. 살다 보니 교회도 달라지고 사는 자리도 바뀌었다. 한동안은 가끔 만나 "밥 한 끼" 하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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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50대 후반으로 가면서 모임은 부부동반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부부여행으로 '이동 거리'가 넓어졌다. 관계는 마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연락 한 번 미루면 계절이 바뀌고, "다음에"는 다음 해가 된다. 그래서 이 모임은 일정표에 '한 칸'을 내주고, 단톡방에 날짜를 박아 넣는 쪽을 택했다.

지난겨울엔 처음으로 강원도 고성 바다를 봤고, 가을엔 순천·구례를 거쳐 지리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2월 6~7일, 거제 이수도가 부부동반 세 번째 여행이다. 세 번 모두 짧은 1박 2일 여정이지만, 그 '짧음'을 계속 이어온 게 더 대단하다. 누가 먼저 "이날 어때?" 한 마디를 던지고, 서로가 "그날은 빼자" 하고 시간을 비워야 성립되는 약속이니까.

세 번째 부부동반 여행

거제 시방 선착장에 차를 세우고 배에 올랐다. 7분 거리라지만 배는 배고, 바다는 바다였다. 신분 확인과 안전수칙 안내가 끝나고 이수도 선착장에 내리니 민박집 승합차가 우리를 맞았다. 운전을 오래 해서인지 배가 고팠다.

민박집 사장님이 한 마디를 던졌다. "점심부터 하시죠." 정말 듣고 싶은 소리였다. 가방을 던져 놓고 식당으로 들어가자 '와우'가 절로 나왔다. 해산물로 꽉 찬 밥상이 섬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해산물 식탁 이수도 여행 1박 3식 첫 식사(점심)
해산물 식탁이수도 여행 1박 3식 첫 식사(점심) ⓒ 이종범

사실 이수도 여행은 거창할 게 없다. 섬이 작아 특별한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이곳은 아내들이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점심을 마치고 아내들은 둘레길로 떠났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도는 길이다.

그 사이 남편들은 이때다 싶어 이벤트를 준비했다. 프랑카드 걸고, 풍선 불고, 케이크 놓고. 30분 만에 끝냈다. 준비가 끝난 우리는 멀뚱멀뚱 바다만 볼 수 없어 해안을 따라 걸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길, 바닷바람과 잔잔한 파도, 새소리만 들렸다. 이상하게 그 조용함이 좋았다. 여행은 결국 속도를 늦추는 기술이기도 하니까. 둘레길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들이 거실로 들어서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여보 사랑합니다
환갑, 인생은 60부터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2026.02.07"

플래카드가 '비밀 이벤트'의 실체를 드러내자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어쩐지 양복 챙기길래 물어도 안 알려주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만."
"맞아, 우리 신랑도 그랬어."

오래된 사이의 웃음은 설명이 필요 없다. 말끝을 다 맺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듣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옆에서 그냥 조용히 웃었다.

적토마 환갑 축하 이벤트 남편들이 준비한 환갑 축하 이벤트
적토마 환갑 축하 이벤트남편들이 준비한 환갑 축하 이벤트 ⓒ 이종범

"똑똑, 저녁 준비됐습니다."

시간은 5시 30분. "아니 저녁이 이렇게 빨라요?" 다들 한 마디씩 했지만, 섬에선 섬의 시간표를 따른다. 밥을 먹고 나오니 정말 금세 밤이 내려앉았다. 아내들은 조명 아래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남편들은 자연스럽게 사진기사로 전환됐다. 그러고는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를 시작했다. 몰래 챙겨온 양복으로 갈아입고, 쑥스럽지만 핑크빛 나비넥타이까지 맸다. 생일 축하 노래를 개사해 부르고, 풍선 액자에 얼굴을 담아 단체사진을 찍었다.

하이라이트는 남편들의 1분 손편지였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첫 순서였다. 몇 줄 읽지 않았는데 목이 메었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아내들 중 몇은 눈물을 비쳤고, 이어진 다른 남편들의 편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짧은 글인데도 마음이 숙연해졌다. 같은 세월을 통과해온 사람들만 알아보는 흔적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샴페인 러브샷까지 마치고 나니, 혼자였으면 못 했을 일을 다섯 부부라는 '숫자'가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결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밤이 깊자 다음 여행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 아내가 먼저 던졌다. "다음은 서바이벌 게임 어때?" 다른 남편이 받았다. "레프팅!" 누군가가 한 마디 보탰다. "다 좋아. 근데 레프팅 할 때 구명조끼보다 기도조끼가 필요하겠는데?" 그 말에 폭소가 터졌다.

아내들은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느냐며 더 신났다. 예순의 여행이 꼭 조용히 쉬기만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이 들수록 삶의 반경은 자꾸 좁아지는데, 다섯이면 그 반경을 다시 넓힐 용기가 생긴다. 혼자면 겁나서 못할 일도 '같이하면' 가능하니 말이다.

관계는 저절로 남지 않는다

요즘은 축하도 위로도 메시지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만나서 웃을 일이 줄어든다. 퇴직하면 회사라는 '자동 연결'이 사라지고, 남성들은 더 빨리 고립을 체감한다. 그래서 이런 부부동반 여행이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노후의 안전망처럼 느껴진다. 한 번의 여행이 한 달치 안부가 되고, 한 번의 웃음이 한 주간의 버팀목이 된다.

다만 우리 부부에게 1박 2일은 '마음먹으면 떠나는 일정'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쉬운 외출이, 우리에겐 계획과 협조가 필요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집을 비운다는 건 달력이 비는 게 아니라 집 안의 일이 통째로 비는 것이어서다.

93세 아버님이 계신다. 거동이 불편한 노견 두 마리도 있다. 집고양이 한 마리, 길냥이 네 마리까지 챙겨야 한다. 밥과 약이 있고, 수액 주사가 있고, 면 기저귀와 패드 교체가 있다. 이 일들이 시간표처럼 돌아간다.

여행 전날부터 딸이 들어와 돌봄을 맡아줬고, 돌아오는 날엔 잠시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사정상 그 이후는 장모님 댁의 도움까지 빌려야 했다. 결국 우리 부부의 1박 여행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딸과 아들·그리고 장모님이 이어준 '돌봄 릴레이' 덕분이었다.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 쉽지만, 자식들도 각자의 가정과 일상이 있다. 딸에게는 벌써 세 번째였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부탁해야 할지 모른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남는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빚이 된다.

적토마의 예순 여행이 내게 남긴 결론은 분명하다. 웃음은 저절로 터지지 않는다. 웃음을 지키려면 연결을 관리해야 한다. 그 연결은 대단한 우정이 아니라, 서로의 일정표에 '한 칸'을 내어주는 약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집은, 그 한 칸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시간까지 빌려야 한다. 그러니 더 조심스럽고, 더 고마워야 한다.

#은퇴이몽#퇴직후삶#부부여행#관계의기술#돌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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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40년을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듣고,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 온 이야기를 강의와 글로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비법보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노후해법’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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