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의집과 오천정사가 한데 어우러진 방울샘. 영천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지난 8일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기포는 한두 군데서 생기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솟아오른다. 그것도 바닥에서 둘레둘레 올라오더니, 금세 떠다닌다.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봤다. 솟아오르는 기포를 사진에 담으려고 렌즈를 맞추는데, 다른 데서 나온다. 흡사 '나 잡아 보라'는 식이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다.
물이 깨끗하고 맑다.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훤히 보인다. 물맛도 좋다. 날씨가 추운 날엔 물이 따뜻하다. 지난 여름날의 기억은 시원했다. 물 온도 14~15℃를 유지한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마른 날이 없었다고 한다.
샘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물을 마시고 임신하면 남다른 아이를 낳는다는 말이 전한다. 세상사 따라 물빛도 달라졌단다.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쌀뜨물처럼 하얀 물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땐 황톳물이 나왔단다. 동학, 한국전쟁, 5․18 등이 그것이다. 물빛에 따라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장성 방울샘. 타원형으로 둘레 15미터에 이른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주변을 대리석으로 둘렀다. ⓒ 이돈삼

▲방울샘 물고기와 기포. 보글보글, 물방울이 바닥에서 둘레둘레 올라온다. ⓒ 이돈삼
장성 영천(鈴泉) 이야기다.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다. 영험하다는데, 신령스런 샘인가? 아니다. 방울 영(鈴), 샘 천(泉)을 쓴다. 방울샘(방울시암)이다.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그리 이름 지어졌다.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따 영천리(鈴泉里)다. 마을 한가운데에 샘이 자리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계속된 소하천 정비사업도 끝나 방울샘과 어우러진다. 덕분에 주민들은 집중호우 때마다 되풀이되던 하천 범람 걱정을 덜었다.
방울샘은 타원형이다. 둘레 15미터, 수심 1미터 남짓 된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주변을 대리석으로 둘렀다. 보수 기록이 적힌 빗돌이 옆에 서 있다. 일제강점 때인 1931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했다. 장성면이 공사비를 후원하고 주민대표 나정숙·김규현·변승기가 참여했다. 대리석은 1991년 둘렀다.

▲방울샘을 지키는 거북이 조형물. 샘의 신비를 더해준다. ⓒ 이돈삼
'영천은 샘의 맥이 드러난 곳의 모래 가운데에서 수많은 방울이 떠올라 끊이지 않는다. 물 색깔의 적백으로 세상일을 징험(徵驗)하고 청탁(淸濁)으로 1년 일을 점쳤다. 샘 안에 물고기는 모두 오른쪽 눈이 멀었다. 다른 물에 있던 것도 이 샘에 들어오면 눈이 먼다. 사람들이 만일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받게 돼 서로 경계하고 침범하지 않았다.'
1927년 나온 〈장성읍지〉에 적힌 얘기다.
방울은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가스다. 지층에서 만들어진다. 샘 바닥이 석회암이고, 산성의 지하수에 녹아 기포가 나온다고 한다. 석회암이 풍화침식되면서 물빛도 달라진다. 화학적 반응의 산물인 셈이다. 물고기의 시각장애 여부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순 없다.

▲영천마을 전경. 제봉 고경명 신도비 앞에서 본 모습이다. ⓒ 이돈삼

▲영천마을 풍경. 소하천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방울샘은 마을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주민들은 방울샘을 마을의 상징처럼 아끼고 보호했다. 마을의 평안과 나라의 안녕에 얽힌 얘기도 전해진다. 자연유산이고 문화유산이다. 샘물은 마실 수 있다. 간이상수도 취수원으로 쓴다. 흐른 물은 농업용수로 쓰인다.
옛날 우물가에 오동나무도 있었다고 전한다. 오동잎이 떨어지면서 샘물을 어지럽혀 베어버렸다. 그 나무가 있었으면, 봉황이 내려왔을까? 마을을 둘러싼 제봉산과 봉황산(황새산)이 봉황 형상이라고 한다. 마을 옛 이름이 오동촌(梧桐村)인 이유다. 더 옛적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오동나무 대신 느티나무가 우물을 지키고 서 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고목이다. 마을에선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당제를 지낸다. 방울샘에선 샘제를 지낸다. 옛날 가뭄이 심할 땐 기우제도 여기서 지냈다.

▲오천정. 오천 김규현이 공부하던 곳이다. 편액을 의친왕 이강이 썼다고 전한다. ⓒ 이돈삼

▲쌀의집. 농사공부방을 운영하며 농맹(農盲) 퇴치, 우량 벼 품종 연구와 보급에 힘쓴 노농 김재식의 연구 공간이었다. ⓒ 이돈삼
방울샘 옆에 오천정사(梧泉亭舍)와 쌀의집도 있다. 오천정사는 오천 김규현이 공부하던 곳이다. 김규현은 지역발전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며 존경을 받았다. 많은 유학자들과 교류도 했다. 시문과 현판이 오천정사에 걸려 있다. 편액은 의친왕 이강이 썼다고 한다.
쌀의집은 김규현의 아들 노농 김재식(1923∼2016)의 연구 공간이다. 김재식은 수협중앙회장, 수산청장, 전남도지사,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향에서 농사공부방을 운영하며 농맹(農盲) 퇴치, 우량 벼 품종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선진 쌀농사 기법도 전수했다. 쌀의집에는 그가 개발한 벼 품종과 특성을 기록한 안내판, 농사서적 200여 권이 전시돼 있다.
김재식의 몸은 전남대병원에 의학용으로 기증됐다. 그의 생전 바람이었다. 김재식 불망비(不忘碑)가 오천정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사회지도층의 본보기를 보인 김규현·김재식 부자다.

▲제봉 고경명 묘.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 금산전투에 참가, 순국했다. ⓒ 이돈삼

▲제봉 고경명 신도비. 그의 생애와 업적이 새겨져 있다. ⓒ 이돈삼
방울샘에서 가까운 데에 제봉(霽峰) 고경명 묘가 있다. 그의 생애를 적은 신도비와 제사 공간인 제봉각도 있다. 조선중기 문신 고경명(1533∼1592)은 임진왜란 때 아들 종후·인후와 함께 의병을 모았다. 금산전투에서 아들 인후와 함께 순국했다. 영천마을 제봉산(328m)이 그의 호와 엮인다.
방울샘에서 옛 이재산성(이척산성)도 멀지 않다. 석성과 토성이 섞인 성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영천마을은 400여 년 전 여양진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다. 이후 김해김씨, 금성나씨가 들어왔다.
영천마을은 장성군 행정의 가온누리다. 군청, 교육청, 경찰서, 읍사무소 등 주요 기관이 영천리에 터를 잡고 있다. 읍내 중심 상권도 영천리에 속한다. 방울샘이 있는 마을에 보해양조 소주공장이 자리잡은 건 당연했다.

▲영천마을 전경. 제봉 고경명 묘 앞에서 본 모습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