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KB부동산 월간 주택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강 이남 11개구의 중소형(전용면적 60㎡ 초과∼85㎡ 이하) 아파트값은 평균 18억269만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사는 교사와 지방에 사는 교사는 '삶의 질'이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어요."
동년배인 데다 직업도 같은 지인의 말에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뻔한 말인 줄 알았는데, 서울 시민으로서 자랑이 아니라 푸념이었다. 생활비가 갑절은 더 들고, 출퇴근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엄살만은 아닌 듯했다. 만약 홑벌이 교사라면 서울에서 가계를 꾸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물가는 바가지요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제주도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지역별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교사의 급여 체계가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해댔다.
또, 출퇴근하느라 매일 3시간 가까운 시간을 길바닥에 쏟아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철과 버스에 '짐짝'이 되는 상황에서 그 시간을 자기 계발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건 말짱 헛소리라고 했다. 기껏해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쇼츠 영상을 보는 게 전부라는 거다.
지방 의료 환경만 개선되면 당장 짐싸겠다던 서울 교사
"그렇다면 지방에 내려와 살지 그러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죠.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니 문제죠."
당장이라도 집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올 것만 같던 그의 '자랑 같은 푸념'에 불쑥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이내 손사래를 쳤다. 기실 지금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의 집값이면 지방의 웬만한 집 몇 채는 너끈히 사고도 남는다. 이런 요지경 같은 세상 물정을 그도 모를 리 없다.
더욱이 지방의 대도시조차 신축 아파트의 빈집이 부지기수여서, 낡고 오래된 집을 떠나 훨씬 편리하고 안락한 새집에서 지낼 수 있다. 출퇴근 시간도 아무리 멀어야 1시간이면 족하다. 자녀들도 모두 독립해서 나갔으니, 거주지를 옮기는 게 별 문젯거리가 안 될 성싶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는 청년층이야 그렇다 쳐도, 안정된 공무원과 교사들조차 쉽사리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삶의 질'을 상쇄하고도 남는 '혜택'이 있으니, 굳이 서울에 붙박여 살려는 게 아니겠는가.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다.
대개 지방에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다고 답한다. 전시회나 음악회는커녕 변변한 연극 한 편 관람하기 힘들어 지방에 살면 정서적으로 피폐해진다고 말한다. 거친 비유일망정 매일 허비하는 시간과 비싼 물가로 인한 고통보다 이따금 즐기는 콘서트의 감동이 더 크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그는 다른 이유를 댔다. 낙후된 지방의 의료 환경 때문이란다. 출퇴근할 때 서너 시간은 견딜 수 있어도, 몸이 아플 때 몇 시간 동안 병원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도는 끔찍한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단다. 소아과 병원이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으라는 건 폭력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서울과 지방 간의 의료 격차가 심각하다며, 당장 응급 환자 사망률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영아 사망률과 기대 수명 역시 차이가 커서, 지방에서 아이를 낳거나 노후를 보내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지방의 의료 환경만 개선된다면 당장이라도 짐 싸서 내려가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늘어난 의대 정원 모두 '지역 의사 전형', 지방에 숨통 틔일까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7학년도 이후 의사인력 양성규모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서울 사는 동료 교사와의 대화가 갑자기 떠오른 건, 지난 10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듣고서다.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5년간 총 3,342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는 내용이다. 첫 해 490명을 시작으로, 연평균 668명이 증원될 예정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증원된 인원을 모두 '지역 의사 전형'으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곧, 서울 소재 의대의 정원에는 변동이 없다. 정부가 학비 등을 지원하되, 졸업 후 10년 동안 서울이 아닌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합리적 토론이나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였다가 분란만 일으킨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사실상 의료 공백 상태인 지방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밑돌은 놓은 셈이다.
"과연 의료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죠. 그나저나 요즘 같은 때 주식을 왜 하지 않으세요? 지방은 몰라도, 서울 사는 교사 중에 주식을 하지 않는 경우는 아예 없을 거예요."
이번 의대 정원 증원 소식에 반색할 줄 알고 연락했더니, 그는 되레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는 요즘 주식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했다. 최근 보유한 주식이 크게 올라 하루하루가 살맛이 난단다. 스마트폰을 켜서 수시로 주가를 확인하는 게 낙이라고 했다. 직업은 다 달라도 주변 지인들과 만나면 온통 주식 관련 이야기뿐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주식에 손댄 건 생활비라도 벌어볼까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였단다. 교사의 봉급만으로는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았는데, 요즘만 같으면 살 만하다고 했다. 주식 덕분에 '삶의 질'에 대한 푸념도, 의료 격차로 인해 서울을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대화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방의 의료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서 그가 서울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섣부르지만, 지역 의사의 양성은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 과밀화한 서울에 원심력으로 작동하길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지방 사람의 서울행을 잠시 고민하게 할 수는 있어도, 서울 사람의 지방행을 이끌진 못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서울 사람이라는 게 '벼슬'인 세상이 됐다.
서울 사람이라는 '기득권'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올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수를 선택한 먼 친척 조카의 '선언'이다. 삼수, 사수를 불사하고, 심지어 2~3년제 전문대에 진학할지언정 결코 지방대에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차라리 '유배형'이라고 했다.
그에게 취업률이나 지방대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의 대책 등은 관심사가 아니다. 당장 서울에서 밀려난다는 '열패감'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서울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지방 사람이 '인 서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연신 강조했다.
그는 한번 지방으로 밀려나면 더는 서울로 재입성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지금 어디에 사는가가 자기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고도 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캠퍼스를 옮긴 대학마다 입시 결과가 휘청이고, 결국 지방대 중의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서울 사는 동료 교사가 '삶의 질'이 낮다고 토로하면서도 서울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어쩌면 재수생 친척 조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방의 낙후한 의료 환경은 핑곗거리일 뿐, 서울 사람이라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지역 의사의 양성을 목표로 한 이번 의료 개혁안이 서울 사람이라는 게 '벼슬'인 세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과 서비스의 '블랙홀'이 된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이른바 '서울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넘어 이젠 온 국민의 뇌리에 '메시아적 이상향'으로 각인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청춘을 보내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을 바란다. 지방에서 살며 서울로 휴가를 떠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제국주의'와 '지방 식민지'로 확연히 갈라진 세상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서울이 죽어야 지방을 넘어 대한민국이 산다. 과연 이번 의료 개혁안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