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5년 12월 18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하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23년을 선고받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1심 판결문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름이 정확히 394번 등장한다. 판결문이 총 347쪽으로 구성됐으니 결과적으로 한 페이지당 1.13회 등장하는 것이다.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가 윤석열씨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일련의 과정을 '내란'이자 '친위쿠데타'라고 정의 내린 가운데, 이 전 장관이 내란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전 장관은 윤석열씨가 비상계엄 선포 전 자신의 집무실로 부른 6명 중의 한 명이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위와 같은 모의에 따라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국가 비상 입법 기구 관련 예산 편성 등 소관 부처 장관들에게 지시할 사항을 미리 준비한 후, 국무회의 심의 없이 2024년 12월 3일 22시경을 기하여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결의하고,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조치 사항이 있거나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그에 따른 직무 수행이 필요한 피고인(한덕수), 법무부장관 박성재,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통일부장관 김용호, 외교부장관 조태열, 국정원장 조태용만을 사전에 대통령실로 불러 비상계엄 선포 계획과 조치 사항을 알리기로 하였다."
한덕수 선고 후 '반박문' 제출
이 전 장관의 구체적인 혐의는 아래와 같다.
① 주무 부처인 행안부 장관으로서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하고 사실상 방조한 혐의
② 경찰청과 소방청에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하는 등 전 대통령 윤석열씨의 내란 범죄에 순차적으로 가담한 혐의
③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의 전 대통령 윤석열씨 탄핵심판 변론에서 단전·단수 지시를 한 적이 없고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는 취지로 허위 증언한 혐의
이 전 장관 변호인단은 지난달 30일 1심 판단을 내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류경진)에 '한덕수 총리 재판부 판결서에 대한 반박'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이 전 장관 측은 "판결문 50쪽에는 (단수 업무에) 수도사업소가 필요한 것 같다고 진술했음을 인정하면서 57쪽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단수 업무를 하는 곳이라고 진술했다고 앞뒤가 안 맞게 설시했다"며 "이는 자의적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짜맞추다 보니 생긴 결정적 흠"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전 장관이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을 검색했다는 판결문 내용도 오류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결심공판에서 이 전 장관은 "피고인(이상민)은 당일(2024년 12월 3일) 오후 8시 26분∼9시 10분 대통령 집무실에 있었는데, 이 34분간 (단전·단수) 지시나 문건을 못 받았냐"는 내란특검의 질문에 '우연히 문건을 보게 돼 내용만 인지했다'는 취지로 "책상 위에 문건이 놓인 것을 봤을 뿐 직접 받은 건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특검은 이 전 장관이 오후 9시 48∼51분께 용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내 읽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거론하며 재차 물었지만 이 전 장관은 "부인이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 시간에 올 수 있을까 걱정돼 당일 일정표를 꺼내 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문건을 꺼내 보여주는 모습이 포착된 CCTV에 대해선 "갖고 있었던 건 일정표다.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을) 언제 알았냐'고 물어봐서 '저도 오늘 이 자리 와서 알게 됐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한덕수 판결문 넘을 수 있을까?

▲계엄 선포 국무회의 종료 후 이상민이 웃으며 한덕수와 후속지시 문건 내용을 검토하는 장면. ⓒ 법원CCTV 캡처
그러나 한 전 총리 판결문에는 이 전 장관의 주장을 배척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상민이 윤석열, 김용현으로부터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와 그러한 지시사항이 적힌 문건을 받아 한덕수와 논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문장이 정확히 기재됐다.
당시의 상황을 인정하는 내용 역시 구체적으로 담겼다.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3항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정부조직법 제37조 제5항은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7항은 '소방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 소속으로 소방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과 법령 규정을 앞서 본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이상민은 대접견실에서 휴대전화로 '헌법'을 검색하여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규정을 찾아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에게 보고하였고, 대접견실로 돌아와 휴대전화로 '정부조직법'을 검색하여 행정안전부장관으로서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에게 봉쇄, 단전․단수 조치 등 업무를 지시할 법률상 근거가 있는지 찾아보았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대통령실 CCTV 영상에 따르면 이상민은 대접견실에서 조태열과 대화하면서 손날을 세워 몇 차례 내려치는 동작을 취하였고, 윤석열도 대접견실로 나와 이상민과 대화하면서 같은 동작을 취하였다. 이러한 동작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바, 앞서 본 사정들에 비추어 '단전·단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민은 윤석열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는바, 이는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내지 '따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상민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대접견실에서 '전화하라'고 지시하자 포고령 발령 후 경찰청장 치안총감에게 전화하였고, 곧바로 서울특별시경찰청장 치안정감에게 전화하여 '국회 출입을 전면 통제하라'는 취지로 지시하였는바, 이상민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로부터 받은 지시에 따라 치안총감에게 전화하여 주요기관에 대한 시간대별 봉쇄 계획 진행상황 등을 확인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결심공판에서 내란특검은 이 전 장관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 전 장관은 최후진술에서 자신의 서울중앙지법 판사 경력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최후진술 후 그가 법정을 떠나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장관님 힘내십시오"와 "아빠 사랑해"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이 전 장관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법정을 떠났다. (
관련기사 : '징역 15년 구형'에 울컥한 이상민...법정에선 "아빠 사랑해" https://omn.kr/2goaz)
웃으며 법정을 떠났던 이 전 장관이 선고공판에서도 웃을 수 있을지, 결과는 12일 오후 2시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