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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인생 호수'에서 물수제비, 설거지 당번을 정하다)

야경 브리즈번의 밤 풍경
야경브리즈번의 밤 풍경 ⓒ 최승우

8박 9일의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막내가 예약한 숙소는 아파트형 호텔이었다. 57층의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 중 막내의 지인이 "한국 음식이 드시고 싶을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라며 김치찌개와 청국장, 햇반과 김치 그리고 라면 등을 가지고 숙소를 찾아왔다. 단지 막내와의 인연으로, 분에 넘치는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는 한편 '막내가 참 잘 살았구나'라는 기특함도 들었다.

이튿날에도 막내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점심을 함께 한 '독일 아저씨'는 이민 3세로 호주 태생이다. 다만 그의 조부모가 독일에서 이민을 왔고, 독일 음식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편의상 '독일 아저씨'라고 칭한다고 한다. 아들은 '독일 아저씨'의 가게에서 2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독일 아저씨'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성실하게 일한 막내를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가족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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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저씨' 부부와 자녀들 그리고 우리 가족을 포함해 9명이 다양한 음식과 포도주를 곁들인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였다. 점심 식사 중 이따금 아들의 통역이 이어졌고 어색한 웃음이 대화를 대신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 한국에서 준비한 스카프와 액자 그리고 한글로 쓴 편지를 드렸다. 영어로 쓰기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예쁜 우리 글씨 '한글'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젊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우리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한글'도 그중 하나이다. '독일 아저씨'의 아들이 구글 번역기를 돌려 편지를 읽던 중 눈물을 흘렸다. 만남, 적응, 고마움, 건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 편지였다. 눈물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식사 후 아쉬움에 기념 촬영을 했다. 헤어지며 '독일 아저씨'의 아들이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며 또다시 울먹인다. 아들 덕에 말 안 통하는 가족이 생겼다. 가족 간의 원활한 대화를 위한 영어 공부 숙제가 생겼다.

골드코스트 끝없이 펼쳐진 해변
골드코스트끝없이 펼쳐진 해변 ⓒ 최승우

호주 입국 3일 차 호주의 동쪽 끝 바이런 베이를 갔다. 바이런 베이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동북부 끝자락에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지형으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관광지이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오르는 언덕길 오른편으로 너른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언덕 정상 부근에는 바이런 베이 등대를 중심으로 여러 곳의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남는 게 사진이라던가?' 멋진 하얀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중 여학생 한 명이 우리 뒤에서 포즈를 취한다. 어느 곳이든 장난꾸러기는 있기 마련이다.

바이런 베이의 마지막 전망대.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바다에 흰 거품을 문 이국의 색다른 풍경은 경탄을 자아낸다. 전망대 앞에는 출입 금지 경고문이 붙어있음에도 두 사람이 낚시에 열중이다. 물거품과 파도가 온몸을 덮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위태롭다.

오는 길에 골드코스트를 방문했다. 골드코스트는 총 70km 정도의 해변이 있으며,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이 시각을 압도한다. 엄청난 크기의 해변에서 바다 수영과 서핑을 실컷 즐길 수 있는데, 실제 여름 방학을 맞이한 현지 아이들로 해변은 북적였다. 방학이면 부족한 학과 공부 혹은 선수 학습으로 평소 학교생활보다 훨씬 힘들게 보내는 우리 아이들의 상황과 겹쳐 안타까움이 들었다.

야외 책상 저녁 시간 조명이 켜진 야외 책상
야외 책상저녁 시간 조명이 켜진 야외 책상 ⓒ 최승우

여행의 마지막 날 시내 구경과 브리즈번 강 야경을 구경했다. 브리즈번은 호주 퀸즐랜드주의 주도로 호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카지노와 활기찬 도시 이미지로 일부 현지인과 여행객에게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브리즈 베가스'라고 불린다고 한다. 실제 브리즈번은 강변의 식당과 고층 건물 그리고 다리의 형형색색 조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강변을 걷던 중 퀸즐랜드공과대학을 지났다. 콘크리트 구조의 야외 책상들이 있었는데 책상마다 조명이 켜져 있었다. 학업을 위한 학교의 배려에 대한 감동과 캠퍼스의 낭만이 다가왔다.

12박 13일의 해외여행,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지만, 조금의 힘듦과 넘치는 즐거움을 맛본 여행이었다. 두 아들의 배려와 "진행시켜!"의 덕이 크다. 한편, 부모의 숙명으로 자식에 대한 걱정이 늘 앞섰으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름의 역할을 다하는 것 같아 대견하고 든든하다.

"인생은 작은 글씨로 쓰는 긴 편지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가족은 인생의 여정 중 지극히 짧은 12박 13일의 여행을 '믿음, 배려, 사랑'이라는 작은 글씨로 장식했다. 먼 훗날 내가 쓴 인생 편지에는 어느 단어들이 촘촘히 박힐 줄 모르겠으나,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면 좋겠다.

두 아들과의 뉴질랜드와 호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캄캄했던 집이 밝은 조명으로 환해지고 차가운 집안 공기가 보일러의 가동으로 따뜻해졌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브리즈번#인연#가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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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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