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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아니 거의 아부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팀원 몇 명 우리 집에 데리고 와도 돼?"
"금요일만 아니면 돼."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금요일은 동화 특강 줌(Zoom) 수업이 있다. 두 시간 동안 밤 10시까지 공부해야 해서 마음도, 몸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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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지금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피아노를 잘 칠 것만 같았던 길고 가녀린 손가락은 온데간데없고, 억세고 거친 손만 남았다. 그 손이 내 손을 잡을 때면 '정말 상남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일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우리는 한때 학원을 운영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폐업을 했다. 그 여파로 빚을 떠안았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어머님도 생존해 계셔 생활비를 고정으로 드려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택한 일이 화물운송업이었다. 2012년, 남편의 나이 마흔 중반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지만,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도피 대신 극복을 선택했다.

지난 1일 남편이 다시 말했다.

"3일 저녁에 세 명이 집에 올 거야. 어떤 음식을 준비하면 좋을까?"
"문어 삼합 어때?"

비교적 준비하기도 쉽고 맛도 있는 음식을 선택했다. 문어 삼합은 한 식당에 가서 먹어본 후 집에서 만들어 먹게 된 음식이었다. 삶은 문어와 돼지고기를 조미하지 않은 김과 깻잎에 싸서 먹으면 궁합이 아주 좋다. 거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무말랭이 김치이다.

남편이 팀원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A 씨는 본가가 포항이라 쉬는 날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그럴 때면 과메기나 회 같은 포항의 명물을 사 와 우리 집에 몇 번이나 가져다주었다. 남편은 늘 그 고마움에 집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C 씨는 내가 친구 모임으로 집을 비울 때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던 사람이다. 팀장인 남편은 쉬는 팀원들의 노선을 대신 다니느라 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한데, 그날은 마침 세 사람의 일이 비슷한 시간에 끝나 집에 초대할 수 있었다.

나는 80년대 말에 결혼했다. 당시 구미에는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파트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대부분 주택에서 살았고, 우리도 구미역 바로 옆 사글세 단칸방에 살았다. 외출을 나오거나 부산 본가에 다녀오던 남편의 선후배들이 제 집처럼 편하게 찾던 곳이었다.

김장철이면 여자 직원들이 여럿이 와 도와주고 자고 가기도 했다. 나는 늘 따뜻한 밥과 반찬을 해 먹였다. 새댁이던 시절이라 요리 솜씨는 변변치 않았지만, 단골 메뉴는 있었다. 바로 돼지두루치기였다. 대문만 나서면 정육점이 있었기에 앞다리살을 잘게 썰어 고추장과 양파, 고추만 넣고 볶아냈다.

"형수님, 진짜 맛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우리 집 문은 365일 열려 있었다. 35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 선후배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그들은 내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부산과 마산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가족 같은 인연이 되었다.

3일 오전, 식자재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밤 10시 반 손님들 도착 시각에 맞춰 문어와 돼지고기를 삶고, 깻잎과 상추를 씻어 상을 차렸다. 처음 오는 B씨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왔다. 유일한 유부남이라 그런지, 접시에 고기가 떨어지면 직접 채워 오고 냉장고에서 술도 꺼내왔다. 꼭 내 아들 같았다.

선물 B 씨가 양손 가득 들고 온
선물B 씨가 양손 가득 들고 온 ⓒ 황윤옥

팀원들은 내가 차린 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맛있게 먹어주니 준비하느라 아프던 허리와 다리가 다 낫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온 터라 준비해 둔 술도 술술 들어갔다. 미리 끓여둔 굴국을 밥과 함께 한 그릇씩 내어주니 '맛있다'를 연발해가며 국그릇이 닳을 듯 싹싹 비웠다.

문어삼합 내가 차린 집밥 한 상
문어삼합내가 차린 집밥 한 상 ⓒ 황윤옥

준비한 음식을 다 주고 나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비워진 접시는 싱크대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술병은 현관에 질서 정연하게 줄 서 있었다. 고맙고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둘은 돌아가고 C 씨만 소파에 자고 있었다.

"형수님, 어제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 A 씨가 아침 7시에 보내온 카톡이었다. A 씨와 B 씨는 90년생인 내 아들과 나이가 같다. 그래도 나를 '형수님'으로 불러주니 내가 젊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도 얼른 답장을 보냈다.

"몸은 괜찮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

사람 사는 게 뭐 별거 있을까 싶지만, 그 별거 아닌 일이 사실은 쉽지 않다. 좋은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고 술 한 잔 기울이는 소소한 시간. 그게 삶이고 정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집밥을 해 먹인다는 건 이미 마음으로 그 사람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아들 같은 젊은이들에게 '형수님'으로 불리며, 나는 또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다음엔 뭘 해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남편팀원#초대#집밥#문어삼합#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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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 재학 중, 브런치 스토리 작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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