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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웃으며 찍었지만 마음 한쪽은 허전했다.
3월 14일, 성남○○센터 콘서트홀. 자이언OB남성합창단 25회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무대는 잘 끝났다. 객석의 박수도 따뜻했고, 준비한 순서도 큰 흔들림 없이 지나갔다. 연주회가 끝난 뒤에는 일가친척과 지인들이 "수고했다"며 다가왔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겉으로 보면 또 한 해의 합창 농사가 잘 마무리된 셈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내내 그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작년보다 단원이 세 명 줄었다는 사실이 올해는 유난히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자이언 1기다. 1978년 창단 이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이 이름과 함께 지나왔다. 그래서인지 합창단 일은 늘 한 박자 먼저 들어온다. 잘 되면 다행이지만, 어려움이 보이면 후배들보다 먼저 어깨가 무거워진다. 누가 맡긴 책임은 아니다. 다만 처음 시작을 만들었다는 의식 때문인지, 합창단 형편이 달라지는 기미가 보이면 먼저 눈길이 간다. 다른 단원들은 공연이 끝나면 홀가분해질지 몰라도, 나는 늘 다음 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25회 정기 연주회 마지막 장면연주회 동문합창 지휘 후 출연진 인사 ⓒ 이종범
연주회 마지막 동문 합창 무대는 전통에 따라 내가 직접 지휘했다. 한 곡뿐이었지만 손끝이 떨렸다. 합창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 떨림은 낯선 감각이 아니다. 그런데 어제의 떨림은 조금 달랐다. 박자를 맞추기 위한 긴장이라기보다, 48년의 시간을 잠시 내 손으로 붙들고 있다는 압박에 가까웠다.
아카펠라 곡이라 반주자에게 첫 음을 잡아달라는 사인을 보내는 순간, 창단의 기억과 여기까지 이어온 시간의 무게가 한꺼번에 손끝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은 무대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 한 곡이 올해 자이언의 시간을 모두 품고 있는 듯했다.
지휘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올해도 여기까지 왔다는 감사가 있었고, 곧바로 내년에도 가능할까 하는 책임이 따라왔다. 해마다 연주회가 열리는 것이 겉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휴대폰 연락처를 하나하나 눌러가며 사람을 모으고, 누군가는 시간을 맞추고, 또 누군가는 빠듯한 예산을 끝까지 부여잡고 한 푼 두 푼 계산하며 무대를 준비한다.
그걸 알기에 연주회가 끝나도 기쁨만 남지는 않는다. 사람도, 마음도, 형편도 간신히 붙들어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와, 이 일을 내년에도 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함께 따라온다. 올해도 해냈다는 감사보다, 이제 다시 무엇을 붙들고 다음 연주회를 준비해야 할지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성남 구시가지 ○○○백화점 6층 문화센터 연습실 문을 열면 나는 습관처럼 의자부터 살핀다. 누가 왔는지보다 누가 아직 보이지 않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늘 ○○가 안 보이네. 무슨 일 있나?"
겉으로는 파트 균형과 소리의 조화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앞서는 마음이 있다. 빈자리가 더 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합창단에서 한 사람의 공백은 단순한 결석이 아니다. 계속 이어져야 할 흐름이 조금씩 얇아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28페이지 B파트부터 갈게요."

▲연주회 연습전○○○존 문화센터 연습실 ⓒ 이종범
지휘자의 말이 떨어지면 연습은 바로 시작된다.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 만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런데 악보를 넘기면서도 내 머릿속은 자꾸 숫자로 향한다. 올해는 30명의 단원을 채울 수 있을까. 노래를 하러 모였는데도, 나는 어느새 사람 수부터 먼저 헤아리고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아직도 이 합창단의 맏형 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요즘은 우리 합창단도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올해로 자이언은 48년을 버텼다. 굳이 비유하면 한창 중심에 서 있을 중년쯤 된다. 원래 중년은 가장 단단해 보이는 때다. 일을 가장 잘 알고, 조직의 한복판을 떠받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바로 그 무렵부터 퇴장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오래 버틴 쪽일수록 자리가 더 불안해지는 장면도 우리는 자주 본다. 자이언도 어쩐지 그 모습과 닮아 있다. 실력이나 열정이 먼저 닳아서가 아니다. 후배로 이어지던 길이 끊기고, 새 얼굴이 들어오던 흐름도 약해지면서 공동체는 조금씩 늙어간다.
우리 합창단은 1978년,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시작했다.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화음을 맞추던 아카펠라 남성중창단이었다. 그 작은 시작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졸업하면 다시 OB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다. 세월 따라 얼굴은 바뀌었지만 이어지던 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그 흐름이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입시 환경이 바뀌고 학교 안 자생 동아리가 설 자리를 잃으면서 그 힘도 조금씩 약해졌다. 성남의 고교 중창단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모교의 중창단도 끝내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자이언은 오래된 합창단인 동시에, 조금씩 홀로 나이를 먹어가는 공동체가 됐다.
퇴직 이후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역 시절에는 관계를 유지한다기보다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이 다시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직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관계를 붙들어 둘 울타리가 약해지면서, 마음은 있어도 만남은 쉽게 뒤로 밀린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수록 관계에는 마음보다 다시 마주 앉는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다시 앉는 일이 쌓여야 비로소 사람 사이도 이어진다. 그렇게 보면 연습실의 출석은 단순한 참석 여부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아직 연결돼 있다는 확인에 가깝다. 내게는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합창 연습이 그렇다. 그 시간은 노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직 누군가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확인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쓴다. 오래 이어왔다는 자부심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겹쳐 있다. 연주회는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무대 뒤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내년에도 그 자리에 설 수 있을까. 내년에도 같은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끝에 나는 또 다음 일요일 저녁 6시를 떠올린다. 아마 그날도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악보보다 먼저 빈자리부터 살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