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터키 아이스크림
- 이은규
이제 우리 밀고 당김을 시작해보자 밀고 당김으로 밀어를 속삭이자 밀고 당김으로 허공을 깨뜨리자 달콤한 마음을 망가뜨리자 밀고 당김으로 몸을 굽히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착각하자 밀고 당김으로 춤을 추자 밀고 당김으로 시선을 빼앗자 밀고 당김으로 정지선을 넘어가자 밀고 당김으로 꽃잎처럼 흩날리자 밀고 당김으로 발을 내딛자 아니면 넘어지자 밀고 당김으로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무해한 뇌를 선물하자 밀고 당김으로 모국어를 잊자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자 밀고 당김으로 눈앞이 하얘지자 밀고 당김으로 이정표가 되자 밀고 당김으로 아름다운 보호색을 가진 새인 척하자 약속처럼 가능하다면 밀고 당김으로 밀고 당김을 가려보자 밀고 당김으로 예쁘게 용감해지자 밀고 당김으로 끝내 밀고 당겨보자 밀고 당김으로 현기증을 견뎌내자 밀고 당김으로 빙빙 도는 봄을 따돌리자 밀고 당김으로 그림자끼리 포옹하자 잠시 멈춤하자 다시 처음인 듯 밀고 당김으로
출처_시집 <무해한 복숭아>, 아침달, 2023
시인_이은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무해한 복숭아>가 있다.

▲밀고 당기며, 무해하게 살아가기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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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에 가면 돈두르마 가판대 앞을 일부러 지나간다. 누군가 상인과 엎치락뒤치락 즐거운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려고. 그러나 대부분은 한참 조용하다.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농락당하기엔 다들 너무 바쁜 모양. 나 역시 장난에 직접 가담할 생각 없이 구경꾼으로 남고 싶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는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요하게 치열해지는 몸과 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세계를 향해 몸을 던졌다가도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 반복에 대해 생각하자.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지? 더욱 쫀득해진 나. 그 외에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결국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쫀득하게 완성된 아이스크림. (연정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