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하늘 아래 웅장하게 서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경과 거울못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 전갑남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은 요즘 언제 가도 붐빈다.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박물관 관람이 의미 있는 여가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고, 우리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며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이해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외국인의 방문도 부쩍 잦다. K-컬처 한류를 타고 우리나라를 찾는 여행객들도 많다.
국중박은 현재 약 43만8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전시 중인 것도 무려 약 1만8000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곳은 어딜까? 관람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 대표 유물로는 반가사유상, 경천사 십층석탑, 신라 금관, 고려청자 투각 향로 등을 꼽는다. 이런 국보급 유물들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아 국내외 관람객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는다. 나는 오늘 국중박 상설전시장 2층의 어둑한 방을 찾아 나섰다. 바로 시대를 초월한 사유의 미소, 반가사유상이다.
비움으로 설계된 숭고의 공간

▲사유의 방에 나란히 모셔진 두 반가사유상의 측면 모습. 별빛 같은 조명과 공간감이 돋보인다. ⓒ 전갑남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생경한 공간감에 압도당한다. 박물관의 다른 전시실들이 수많은 유물로 빼곡히 채워진 것과 달리, 이 비교적 넓은 방에는 단 두 점의 유물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위해 조도를 극도로 낮추고, 바닥은 미세하게 기울였으며, 천장은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처럼 설계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오직 두 점의 반가사유상만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이 대담한 여백은, 관람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오로지 유물과 나 사이의 대화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수많은 보물 사이를 바쁘게 스쳐 지나가던 발걸음은, 이 텅 빈 곳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느려지고 멈춰 선다.
침묵의 방,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의 방. 사람들은 저마다 사유상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불상을 응시한다. 이 고요한 대치 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누군가는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고뇌를 내려놓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설계와 희망을 저 미소에서 찾으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불상의 이름이 '반가사유상'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반가(半跏)'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은 독특한 자세를 말한다. 이는 완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러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역동적인 자비의 태세다. 여기에 손가락을 뺨에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사유(思惟)'가 더해진다. 이는 단순히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인간의 고통을 꿰뚫어 보려는 치열한 성찰이다. 즉, 반가사유상은 가장 깊은 내면의 평화와 세상을 향한 뜨거운 실천 의지가 한 몸에 녹아 있는 경이로운 형상인 셈이다.
쇠붙이에 생명을 불어넣은 고대 장인들의 경이로운 기술

▲화려한 보관과 역동적인 옷자락이 특징인 국보 제78호의 전체적인 실루엣. ⓒ 전갑남

▲절제된 세세한 아름다움과 사실적인 신체 묘사가 돋보이는 국보 제83호의 전신상. ⓒ 전갑남
사유상의 신비로운 미소 뒤에는 쇠붙이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고대 장인들의 경이로운 기술력이 숨어 있다.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의 두 반가사유상은 모두 구리 합금으로 형상을 만들고 겉에 금을 입힌 금동불상이다. 특히 고대 장인들은 '밀랍 주조법'이라는 고난도의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는 현대 금속 공학으로도 재현하기 까다로운 정밀함을 요구한다.
벌집의 밀랍으로 정교하게 형상을 조각한 뒤 흙을 덮어 거푸집을 만들고, 녹아 빠진 밀랍의 빈 곳에 쇳물을 붓는 이 방식은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청동의 두께다. 특히 국보 제83호는 높이가 93.5cm에 달하는 대형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청동의 두께가 5mm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얇으면서도 거품 하나 없이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어냈다.
쇳물이 식기 전 그 좁은 틈을 완벽하게 파고들게 한 정교한 온도 조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딱딱하고 차가운 쇠붙이를 마치 말랑한 찰흙처럼 주물러 부드러운 살결과 물결치는 옷자락을 표현해낸 솜씨,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지극한 정성의 결정체다.
고뇌하는 근육 vs. 미소 짓는 평온
침묵 속에서 사유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틈에서, 한 어린이가 스스로 사유상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 조른다. 아이의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문득 서양의 대표적인 사유의 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겹쳐 보인다.
지옥의 문 앞에서 고뇌하는 로댕의 조각이 근육의 긴장감과 뒤틀린 신체를 통해 인간의 고통스러운 번뇌를 투쟁적으로 보여준다면, 반가사유상의 손가락은 뺨에 닿을 듯 말 듯 가볍다. 그것은 억지로 쥐어짜는 생각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깨달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서양의 사유가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함'이라면, 동양의 사유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 찾아오는 평온'에 가깝다.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 화려함과 절제의 이중주

▲국보 제78호의 신비로운 미소와 정교한 보관을 가까이서 포착한 근접 사진. ⓒ 전갑남

▲국보 제83호의 삼산관과 온화한 얼굴을 강조한 클로즈업 사진. ⓒ 전갑남
사유의 방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두 사유상의 대조적인 아름다움이다. 먼저 왼쪽에 자리한 국보 제78호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듯한 '일월식(日月飾)'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어깨 위로 솟아오른 옷자락은 마치 봉황의 날개처럼 역동적이다. 1912년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입수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래, 그 출처가 베일에 싸여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반면 오른쪽의 국보 제83호는 현존 금동반가사유상 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며,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소박한 삼산관(三山冠)을 썼고 상반신에는 아무 장식도 없지만, 사실적인 근육 묘사 덕분에 마치 실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1920년대 경주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불상은 일본 광륭사의 목조상과 쌍둥이처럼 닮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길상사 '무소유 길'의 가르침으로
사유의 방을 나서려는데 문득 며칠 전 성북동 길상사 숲속, '무소유 길'에서 마주쳤던 사유상이 겹쳐 보인다. 법정 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진영각으로 향하던 그 길, 나무 그늘에 소박하게 서 있던 반가사유상의 미소 말이다. 박물관의 국보가 장엄하고 압도적인 예술적 감동을 준다면, 길상사의 사유상은 비우고 또 비워낸 끝에 도달하는 평안함이 무엇인지 나지막이 속삭여주는 듯했다.

▲북동 길상사 숲속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석조 반가사유상의 모습이다. ⓒ 전갑남
결국 장소는 달라도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꽉 쥐고 있던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온함에 닿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사유. 박물관을 나서 다시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로비로 돌아올 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억겁의 세월을 견딘 저 미소가 작은 불빛처럼 남겨져 있었다.
채우는 삶이 아닌, 잘 비워내는 삶을 살아가라는 고요한 가르침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