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아침, 휴대전화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택배 기사님의 안내 문자였다. 무심코 확인한 발송인 칸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마이뉴스.'
기다리던 '시민기자' 명함이 오고 있었다. 짧은 문자였지만 마음의 파동은 한 박자 늦게, 그러나 묵직하게 밀려왔다. 퇴직과 함께 소리없이 사라졌던 이름표가 다시 나를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오늘 그 명함은 내 지갑에 한구석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게는 예전과 다르다. 과거의 명함이 직함과 권위를 증명하는 '방패'였다면, 지금의 명함은 내가 여전히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증표'다. 자긍심과 함께 찾아온 기분 좋은 책임을 기꺼이 껴안기로 했다.
사회적 언어를 잃어버린 시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 ⓒ 이점록
퇴직 후 가장 먼저 짐을 싼 것은 나를 설명해주던 종이 한 장, 명함이었다. 은퇴는 단순히 소득이 끊기는 경제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나를 지탱해온 사회적 역할이 멈추는, 일종의 '존재적 멈춤'이다. 은퇴 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넘쳐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불러줄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서랍 한쪽에 가지런히 모셔둔 옛 명함들은 어느 순간 갈 곳을 잃었다. 겨우 종이 한 장이 사라졌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나라는 존재의 선명도까지 함께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텅 빈 명함 지갑을 보며 생경한 질문이 차올랐다.
'나는 지금 누구인가?'
명함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다. 직함과 소속, 그리고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내 위치를 확인시켜 주던 작은 신분증이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겪는 이런 혼란을 '역할 상실'이라 부른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릴 이름이 사라질 때 인간의 존재 기반은 흔들린다.
그 변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 비집고 들어온다. "어디 다니세요?"라는 가벼운 질문 앞에서 말끝을 흐릴 때, 나를 소개할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다. 사회가 부여했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가자, 나 자신을 설명할 언어도 함께 휘발되어 버렸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 당연한 위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처음 내 이름 석 자가 달린 기사가 포털 화면에 떴을 때, 습관처럼 두 번을 확인했다. 혹시 꿈일까 봐서였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원고료가 크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책임감이 솟구쳤다. 편집부로부터 불린 "기자님"이라는 호칭은 낯설었지만, 가라앉아 있던 마음 한구석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이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반신반의했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내가 정말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시민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하자, 그 말이 결코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장을 응시하고, 메모하고, 자료를 찾고, 비뚤어진 문장을 고친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생계를 위한 '업무'였던 일들이 이제는 삶의 궤적을 잇는 '이야기'가 되었다. 물리적인 명함은 잠시 사라졌을지 몰라도, 삶 속에서의 역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삶이 다시 건네준 두 번째 이름표
이제야 깨닫는다. 명함은 조직이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이 다시 건네주는 것임을 말이다. 은퇴 후의 명함은 꼭 고급스러운 지질에 인쇄될 필요가 없다. 시민기자, 봉사자, 멘토, 혹은 정성스러운 기록자… 중요한 건 직함의 화려함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돈이 되는가'보다 '의미가 있는가'가, '얼마나 빨리 가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갈 수 있는가'가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한다.
방금 도착한 새 명함처럼, 내 인생의 2막도 다시 선명하게 인쇄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시민기자로서 하루를 연다.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보고, 잊히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삶의 가장 낮은 현장에서 가장 느린 진실을 건져 올리고 싶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하루 앞에 조용히 놓이는 작은 이정표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새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