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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5 17:43최종 업데이트 26.02.05 17:43

역사교육이 곧 민주시민교육인가

[주장] 민주시민교육을 외치면서도 정작 정치교육을 피해 가는 모순

12·3 계엄 사태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시민들은 거리와 광장에서 헌법 질서를 지켜냈지만, 민주주의는 제도와 교육을 통해 다시 다져지지 않으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민주시민교육 강화는 시대적 과제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최근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명분으로 역사교육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중학교의 근현대사 시수 확대와 고등학교 역사 선택과목 신설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과연 민주시민교육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과거를 더 많이 아는 교육이 아니라, 시민이 현재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고 헌법적 가치에 기초해 판단하며 참여하도록 돕는 교육이다. 민주주의는 기억의 축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토론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시민이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을 역사 시수 확대라는 기술적 조정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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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시간을 역사 교과서 앞에서 보낸다. 같은 한국사를 초·중·고에서 세 번 배우고, 수능 필수 과목으로까지 치른다. 그럼에도 정치 혐오와 민주주의 불신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학생들은 헌법을 삶의 규칙으로 배우지 못했고, 실제 정치 갈등을 토론해 본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른 선택을 했다. 나치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독일이 선택한 것은 '역사 과목 확대'가 아니라 '정치교육'이었다.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은 학생에게 올바른 답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논쟁을 열어두고, 판단의 책임을 시민에게 돌려준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학습된다.

반면 한국의 교육정책은 말로는 민주시민교육을 외치면서도 정작 정치교육을 피해 간다. 역사 시수를 늘리는 동안, 정치·법·민주주의 교육은 사회과 안에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선택이 아니라, 갈등을 과거로 밀어내는 선택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안전한 과거'가 아니라 '불편한 현재'를 다루는 교육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교실에서 토론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많은 역사 시수를 늘려도 민주주의는 강화되지 않는다. 역사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목의 증설이 아니라, 정치교육을 정면으로 복원하는 용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입니다.


#민주시민교육#역사교육#정치교육#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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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semioman) 내방

인하대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연구자입니다. 사회교육과 교수, 다문화융합연구소 소장, (사)공존과이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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