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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5 17:08최종 업데이트 26.02.05 17:08

제주 4.3 정명, '사건'을 넘어 '항쟁'으로

제주 4.3 항쟁의 주체가 도민이기에 출발 시점은 1947년이어야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발제자들 왼쪽부터 양조훈, 양경인, 김동전(좌장), 허호준, 김동윤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발제자들 왼쪽부터 양조훈, 양경인, 김동전(좌장), 허호준, 김동윤 ⓒ 박진우

제주4.3항쟁 80주년을 앞두고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연구자들이 5일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제5회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를 통해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해당 학술대회는 6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된다.

학술대회 첫날 기조발표에서는 양조훈 이사장(전 제주4.3평화재단), 양경인(작가), 허호준 객원연구원(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김동윤 교수(제주대 국어국문학과)의 발표와 박사와 석사 과정 연구자 28명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첫 기조발제는 <제민일보> 부장으로 <4.3은 말한다> 공동 집필자이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양조훈씨가 '4.3이름의 변천과 과제'를 통해 "이름이 바로서야(正名) 책임도, 화해도, 미래도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제주4.3은 "항쟁(항거/봉기)"으로 불려야 하며 "4.3 관련 단체들의 적극적 사용과 제주도의회의 4.3 조례 개정 시도, 제주4.3특별법의 명칭 및 정의 개정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 발제자 허호준 객원연구원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 발제자 허호준 객원연구원 ⓒ 박진우

<4·3, 미국에 묻다>의 저자인 허호준(입명관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은 '기억과 해석을 넘어-4.3본질 연구의 필요성과 방향'을 통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에서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 동안 4.3과 관련하여 박사 7편, 석사논문 42편인데 비해 이번 발표 논문이 28편으로 총 49편이 이루어졌으나 4.3시기 '본질'을 다른 연구는 4~5편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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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는 "1948년 4월 3일 무장대는 '미제는 즉시 물러가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제주도민에 보내는 호소문에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봉기했다고 나와 있지만, 정작 4·3시기 무장대가 미군 시설이나 미군을 공격한 사례는 없다. 미군 정보보고나 외교문서에서 '대량 학살' 또는 '집단학살'이라고 표현되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제주도 상황을 보고했음에도 왜 실제 이를 막기 위한 개입은 없었는지 여전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본질 연구를 주장했다.

허씨는 "미군정이 실시한 4·3 무장봉기의 원인인 3·1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았다"며, "1947년 3월 1일의 발포가 우발적이었는지, 누구의 명령에 의한 발포였는지 규명되지 않았다. 수장 학살은 누구의 명령으로, 어떤 행위자가 집행했는지도 모른다. 4·3특별법은 4·3의 종료 시점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산사람'이 1957년 4월 2일 체포된 사실을 고려하면, 이 종료 시점 설정의 타당성 역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 발제자 김동윤 교수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기조 발제자 김동윤 교수 ⓒ 박진우

김동윤(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해방기 제주 통일 독립 항쟁 연구'를 위하여 남로당 중앙당에서 전력투구한 '2.7구국투쟁'의 동참 미흡과 미군의 G-2보고서 등을 통해 "남로당은 좌파적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지향했겠지만, 제주도민은 '통일된 민주정부'를 원했던 것"이며, "이러한 염원과 지향이 배합되어 '미국 점령정책의 최종적 귀결이었던 5·10단독선거'를 거부"한 것으로 제주도민 총 유권자 12만 7751명 중 7만 4053(57%)명이 5월 10일 남쪽만의 단독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통해 "해방기 제주도민의 신념이 남로당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결합하였다 해도 "온 국민의 뜨거운 역량이 결집된 것이듯, '해방기 제주 통일 독립 항쟁'도 남로당이라는 특정 세력이 주도한 게 아니라 도민들의 축적된 열망이 분출된 결과"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제주4.3항쟁 80주년은 2027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저자인 양경인 작가는 '해방공간(1945~48)의 제주여성운동과 4.3정명'을 통해 제주 여성들의 투쟁사를 발표하였다.

양씨는 여성 투쟁을 이끈 이들은 억압된 제도속에서 주체의식을 가진 여성들이었으며 "미군정의 좌익과 중도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면서 구습 타파와 계급 평등사상을 기치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1사건과 4.3봉기를 거치며 반제 통일운동으로 나갔으나, 4.3 전반에 대한 탄압과 대학살의 광풍에서 좌절되었다"며, 그 이후 "제주여성운동은 친미적이며 반공적인 여성 운동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제주여성운동도 대한부인회와 같은 관변단체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며 '공로'를 중심으로 알려진 이면에는 정부 수립 후의 '과실'에 대한 사례도 알려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충돌을 통해 통치 체계의 변화 추구를 혁명이라고 부르나 용어의 합의는 정치적 산물이기에 대한민국에서의 4.3특별법 개정 또한 입법부의 정치적 합의로 이루어진다.
4.3의 정명을 위한 분위기 형성은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만의 노력이 아니라, 여순1019의 '항쟁'유족회처럼 4.3유가족 및 제주도청, 제주교육청 등의 노력이 병행될 때 중앙정부와 입법부의 공감대 형성에 기여 할 것이다.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연구자 및 관계자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연구자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연구자 및 관계자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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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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