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대치동학원가. 2020.3.30 ⓒ 연합뉴스
4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학원, 성공 그리고 행복에 대한 한국에서의 물음들(In South Korea, Questions About Cram Schools, Success and Happine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한국의 과도한 사교육 열기를 조명했다.
NYT는 학원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hagwon'이라고 명시하며 "경쟁이 치열하기로 악명 높은 한국의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학, 한국어, 영어 등을 가르치는 사설 입시 교육기관"이라고 소개했다.
매체는 두 딸을 키우는 이경민씨의 일상을 따라가며 한국의 사교육 시장을 그려냈다. 2013년 5살과 4살인 연년생 자매를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는 이씨는 큰딸이 8살 때 자신을 향해 "엄마는 공부 못 했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학업 성취가 곧 기회이자 행복한 삶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NYT에 털어놓았다.
"한국 아이들 4세부터 입시 시달려... 학원 등록 위해 또 학원 보내기도"
NYT는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학령기 학생의 80%가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을 받고 있다. 학령인구는 수십 년간 감소해 왔지만, 사교육 시장은 2024년 203억 달러(약 27조 원)라는 기록적인 규모로 성장했다"라며 "아이들이 학원에 들어가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는 4세 아이들이 영어 유치원 입학시험을 치른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준비반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뉴욕의 센트럴파크만 한 면적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는 1200여 개의 학원이 밀집해 있다. 이곳 주변에는 학업 성취를 위한 지나치게 최적화된 경로들이 널려 있다"라며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스터디 카페와 두뇌 강화를 강조하는 한의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방음 처리된 '테라피 존'을 예시로 들었다.
매체는 학원에 등록하기 위한 학원도 있다고 소개했다. NYT는 "대치동에서 가장 명문으로 꼽히는 수학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치르는 시험처럼 경쟁률이 매우 높은 학원 등록 시험의 경우 이를 위해 부모들이 다른 학원에 보내 자녀들을 공부시킨다"라며 "흔히들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면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여섯 번을 떼야 한다'라고 말한다"라는 이씨의 발언을 인용했다.
"초등학생이 학원만 최소 주 40시간 수강... 10세 미만의 우울증 증가, 사교육과 연관 있어"
사업주의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프랜차이즈 영어 학원의 강사는 NYT에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 수업만 최소 주 40시간을 수강한다고 말했다. 그는 6살 제자가 본인이 공부를 못해서 온 가족이 불행해 질까봐 걱정하는 내용의 영어 에세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세 아이의 엄마인 박은아씨는 몇 년 전 초등학생인 큰딸의 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언급했다. 박씨는 춤은 좋아했지만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던 딸의 학우가 명문 수학 학원 입시에서 떨어진 후 그런 선택을 했다면서 그 사건을 계기로 자녀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며 "만약 내 자녀들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해도 저는 괜찮다"라고 매체에 전했다.
이와 관련해 나종호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학업 압박과 자살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10세 미만 한국 아동들의 우울증이 증가한다는 통계에 대해선 "10세 미만의 우울증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본다"라고 평했다.
"한국 사교육 대안? 돈 있는 사람에게만 유학이란 탈출구 있어"
NYT는 "이처럼 점점 심해지는 경쟁의 근원은 단순히 지나치게 야심 찬 부모들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76%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대학 진학을 촉발했던 근본적인 경제적 불안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면서 ▲취약한 국민연금 제도 ▲양질의 생산직 일자리 부족 ▲제한적인 사회적 상승 이동성 ▲심각한 소득 불평등 등을 꼽았다.
'왜 나의 인생 진로는 항상 정해져 있는 것 같냐'는 11살 자녀의 질문에 불안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교육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소아림씨의 발언을 인용한 NYT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탈출구가 있다"라며 "바로 나라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당 보도에서 처음 사례로 언급된 이경민씨 자녀들의 경우 2024년 모든 학원을 끊고 미국의 사립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매체는 이씨가 "이제 사교육 문제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어진 것 같다"라며 "대치동에서 8학년(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2학년) 수준까지 수학을 공부한 후 미국으로 가면 천재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뒤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교육에 충격받은 미국 누리꾼들... "한국이 초저출산 국가인 이유 있다"

▲한편 해당 보도에는 170여 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렸다. 이중 많은 댓글들은 한국의 사교육 문제와 저출산을 연결짓기도 했다. 한 댓글은 "내가 읽어본 것 중 가장 암울한 내용 중 하나"라며 "일주일에 7일 내내 공부만 해야 한다면 아이로 사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머니들이 받는 압박을 생각하면 한국의 출산율이 0.7 정도로 떨어진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 <뉴욕타임스> 댓글 갈무리
한편 해당 보도에는 170여 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렸다. 이중 많은 댓글들은 한국의 사교육 문제와 저출산을 연결짓기도 했다.
한 댓글은 "내가 읽어본 것 중 가장 암울한 내용 중 하나"라며 "일주일에 7일 내내 공부만 해야 한다면 아이로 사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머니들이 받는 압박을 생각하면 한국의 출산율이 0.7 정도로 떨어진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어 "향후 20년 동안 한국의 인구 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곧 노인 인구는 너무 많아지고 젊은 인구는 너무 적어질 것"이라며 "한국은 놀라운 경제적 기적을 이루어냈지만, 한국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많은 사회적 합의들이 오히려 한국을 파멸로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다른 댓글 또한 "기자가 이러한 경쟁적인 분위기와 한국의 초저출산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라며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자유로운 시간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기 어렵다면 가정을 꾸리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