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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동생들 왔다 갔지?"

우리 동네에서 아버님과 함께 가장 오래 살아온 이웃 사촌, '사탕 할머니'가 늘 묻는 말이다. 예전엔 "네" 하고 웃고 지나갔지만, 퇴직한 뒤부터는 그 한 마디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명절 풍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무조건 모이는 날'이 아니라 각자 흩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해외여행도, 국내여행도, 그냥 쉬는 명절도 흔해졌다. 그 쉼을 누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는 방식이 바뀌었고, 돌봄의 무게가 집집마다 달라졌다. 명절 가족 모임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마음이 멀어져서라기보다, 각자 사정이 달라진 탓이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아직 '모이는 쪽'이다. 고령의 아버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실향민으로 1남 5녀를 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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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날 저녁, 우리 집은 시장통 같았다. 낮에는 각자 시댁 일정을 맞춰 움직이다 보니 결국 저녁에 모이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익산으로 시집간 큰여동생 부부를 빼면 동생들 부부는 모두 성남 인근에 산다.

조카들까지 한꺼번에 들어오면 현관은 신발로 꽉 차고, 주방엔 접시가 순식간에 쌓인다. 큰 상 두 개에 식탁까지 총동원해도 한 번에 끝내기 쉽지 않다. 식사가 끝날 즈음 어른들 상은 자연스레 술상으로 바뀌고, 그때부터 조카들이 거실에 윷판을 편다.

설 명절 윷놀이 4가족 대항 윷 놀이
설 명절 윷놀이4가족 대항 윷 놀이 ⓒ 이종범

"두 윷 걸이니까 윷은 없고 걸로 가야지!"
"아빠, 그러면 우리 위험해! '개'는 막 던져도 나오잖아."

말판에 훈수가 붙는 순간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웃음소리도 커진다. 윷가락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순번을 타고 돌면 집 전체가 들썩인다. 신기한 건 이렇게 시끌벅적해도 이웃 민원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아버님은 홀로 남하한 실향민으로 1남 5녀를 낳았다. 그중 나는 맏이다. 다음 달 3월에 태어날 친손녀까지 더하면, 6형제 부부에 손자녀들, 며느리와 사위까지 합쳐 33명 대식구가 된다. 아버님 한 분이 이렇게 많은 가족을 만든 셈이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모일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아버지가 그 어린 나이에 내려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북쪽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잖아."

가족별 대표선수 2명씩, 4가족이 먼저 둘러앉고 판돈은 가족당 1만 원이다. 한 판에 4만 원. 큰돈은 아닌데 승부욕이 붙으면 40만 원이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딴 돈은 주머니로 들어가지 못한다. 조카들이 "치킨!" "피자!"를 외치면 딴 돈은 곧장 간식값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피자 박스와 치킨 봉지가 펼쳐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TV 앞으로 옮겨가 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 vs 스위스 중계를 보며 응원을 이어갔다. 비록 졌지만 "그래도 잘했다" 한 마디로 넘기고, 내년을 기약하며 설 밤을 마무리했다. 남는 건 덕담과 웃음, 그리고 "또 보자"는 약속이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탕 할머니를 만났다. 나를 아들처럼 여기는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사탕을 한 움큼 쥐여 주더니, 아무렇지 않게 또 물었다.

"설에 동생들 왔다 갔지?"
"네, 조카들까지 다 왔다 갔습니다. 많이 시끄러웠죠?"
"명절은 그래야 해. 아버님 연세도 많으신데… 잘 해드려."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더 무겁게 들리기도 했다. 작년 추석 무렵부터 우리 집 명절에는 묵직한 주제가 하나 더 얹혔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당신 장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범아, 얘기 좀 하자."

아버님 방으로 들어가니 사진 한 장을 꺼내셨다. 국가 참전 유공자로 뒤늦게 선정되면서 기념품으로 받은 흰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이걸로 영정사진 만들고 싶은데, 훈장도 같이 넣어서 해줄 수 있니?"

사진과 훈장 참전용사 군복에 달기 원하는 훈장
사진과 훈장참전용사 군복에 달기 원하는 훈장 ⓒ 이종범

훈장을 왼쪽 가슴에 달고 싶다는 바람까지 덧붙였다. 늦게 받은 '국가의 인정'을 마지막 인사에라도 달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들렸다. 수의도 한 벌 준비해 두라 하셨다. "50만 원 넘지 않는 걸로."

국립이천호국원 이야기도 이어졌다. 답사 삼아 이미 두 번 다녀온 곳인데도, 그때가 오면 미루지 말고 어머니와 합장하라고 하신다. 마지막은 절차였다. "안장하려면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네가 맏이니까 미리 알아 둬라."

장례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뜻을 받드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신이 스스로 준비의 순서를 정리해 주시니 자식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해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음은 가벼울 수가 없다. 홀홀단신 남하해 가족 하나로 버텨오신 분이, 이제는 당신의 끝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겁다.

아버님은 가족 모임 때마다 두 가지를 반복해서 당부하신다. 건강, 그리고 형제간 우애다. 열일곱에 홀로 남하해 피붙이 한 명 없이 살아온 경험이 그 말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6남매는 공식적으로 1년에 다섯 번은 모인다. 구정(설), 어머님 기일, 추석, 연말 아버님 생신은 우리 집이고, 봄철 전원주택 '불멍' 모임만 장소가 바뀐다. 우리 집이 큰집이라 자연스레 중심이 된다.

가족 모임이 끊기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이번 설을 보내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설·추석·기일은 달력에 박혀 있어도, 모임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몇 시쯤 올 거냐" 한 번 더 묻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누군가는 상을 펴고 치운다. 맏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내가 먼저 챙겨야 할 일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요즘 들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 생각은 설날 오후 4시쯤,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둘째 동생의 글로 더 확실해졌다. 둘째는 암 치료 중이다.

"내가 어제 밤에 심하게 설사하고 토하고 해서 상태가 별로에요. 오늘은 집에서 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고 담에 봅시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네요..."

명절은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건강이 흔들리면 약속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그래서 더 겁이 났다. 아버님이 떠난 뒤에도, 우리 가족 모임이 달력처럼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큰 상을 차려야만 모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형식은 조금 바뀌어도 좋다. 밥 한 끼를 간단히 먹어도 되고, 커피 한 잔만 마셔도 된다. 안부 전화 한 번 더 걸더라도, 우리 집 모임이 끊기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을 다시 모이게 하는 건 결국 누군가의 한 마디다. "이번 주말에 잠깐 볼래?" 그 말을, 이제는 우리가 먼저 꺼내야 한다. 가족모임을 이어주는 건 상차림이 아니라,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다.

#대가족#설명절#가족모임#고령아버님#큰집과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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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40년을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듣고,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 온 이야기를 강의와 글로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비법보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노후해법’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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