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특별한 사건이 거의 없는 소설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한 남자의 조용하고 평범한 생애가 담담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이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사십 중반에 읽었다. 큰아이를 유학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마저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유와 넘치는 시간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로운 시간이었는데, 막상 손에 쥐어보니 그것은 기쁨이라기보다 어딘가 허전하고 낯선 감정에 가까웠다. 분주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의 중심에서 살아오던 시간이 멈춘 자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막연한 허무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무렵 <스토너>를 읽었다.

▲책표지 ⓒ RHK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고, 우연히 접한 문학 강의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는 화려한 성공을 이루지도, 사회적으로 큰 인정을 받지도 못한다. 사랑 없는 결혼 생활과 직장 내 갈등, 가족과의 거리감 속에서 그의 삶은 여러 번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끝내 문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의 삶을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그는 조용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붙잡고 살아간다.
나는 그 모습에서 이상할 만큼 위로를 느꼈다. 스토너의 인생이 특별히 행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평범하고 때로는 안쓰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 모습은 나에게 "그래,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용히 건넸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 깊은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이나 명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토너 역시 문학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세상의 찬사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견디고, 이해하고, 완성해간다. 그 모습은 내가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또 한편으로 나는 스토너의 결혼 생활에서도 많은 감정을 느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그 서툴고 답답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무력감과 외로움이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인생이 얼마나 위대하게 빛났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성실하게 견디며 살아냈는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 시선은 놀랄 만큼 따뜻하고, 동시에 담담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를 격려하거나 위로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 편이 잔잔히 다독여진다.
아이들이 떠나고 남겨진 시간 앞에서 느꼈던 허무와 공허함 역시, 어쩌면 삶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토너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갔듯이,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은 말해주는 것 같다.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스토너>를 덮으며 나는 거창한 깨달음보다는 조용한 안도를 느꼈다. 인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이 사실은 아주 평범하고 조용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은 특별하다. 누군가의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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